여름, 그 깜부기의 노래-박라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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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톡톡 여물어 곡식이 되지 못하고
여윈 보리 모가지 그 비좁은 대롱 속에
애달픈 소설이 될 수도
교훈이 될 수도 없는 이야기를 삭이다가
이슬처럼 방울방울 튀어 오르는 노래
그런 노래가 되게 하고 싶었지요
제 몸이 조금씩 썩어가도 깜부기
그 못난 몸에서 흘러나올 아름다운 노래를 위해
치유를 거부하는 모질은 목숨
죽어가는 검은 얼굴을 애처롭게 보아주는
종달새는 혹시 없었을까요?
내 슬픈 눈을 기억하는 친구여 형벌이여
늪에서 늪으로 더 눅눅한 늪으로 가는 저 좀 높이
하늘까지 들어올려 주세요
죽은 몸으로도 숨죽여 노래하는
여름 그 깜부기의 노래를
가만히 한번 들어보아 주세요

<약력> ▲51년 전남 보성 출생 ▲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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