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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말못할 사정」 있나/종결 서두르는 슬롯머신 배후수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열쇠쥔 덕일씨와 「모종의 거래」 의혹/엄·박씨 사법처리로 매듭짓는 인상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씨사건의 열쇠를 쥔 동생 덕일씨가 19일 밤 자진출두함에 따라 비호세력수사가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음에도 불구,검찰이 주춤거리며 수사를 조기종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덕일씨는 각계의 폭넓은 인맥을 쌓아오며 정씨 3형제의 대외로비를 도맡아 온 것으로 알려져 검찰이 제대로 추궁할수만 있다면 말 그대로 경천동지할 핵심비호세력을 줄줄이 엮어 낼 수 있는데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초 검찰은 수사에 착수하며 비호세력이 정계·검찰·경찰 등 모든 권력기관에 포진해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한 검찰간부는 『모든 악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 제살을 도려내는 각오로 임하겠다』며 정씨로부터 「검은 돈」을 받아온 모든 비호세력의 명단을 공개할 용의가 있다고 공언한바 있었다.
그러나 검찰은 최근 『양보다 질 아니냐』며 엄삼탁 전병무청장과 박철언의원선에서 비호세력수사를 마무리할 방침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러한 태도변화는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사건의 파편이 정치권 및 검찰·안기부의 심장부까지 깊숙이 날아가 검찰로서도 감당치못할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지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특히 전·현직 고검장급 등 검찰고위층의 연루설이 퍼지며 검찰수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그럴듯한 소문마저 떠돌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검찰은 지명도는 높으나 「괘씸죄」에 걸린 박 의원과 폭력배 비호세력으로 소문난 엄 전청장만을 희생양으로 삼아 일단 사건의 구색을 맞추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감찰은 지금까지 한달 가까이 1백50여개이상의 정씨 가명계좌를 추적,나름대로의 물증을 확보했을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자금추적결과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며 『정씨로부터 명절때마다 돈을 받았다고 비호세력으로 몰수있겠느냐』꼬리를 내리는 상태다.
이러한 상황으로 미루어 볼때 자금추적의 윤곽이 차차 드러남에 따라 검찰내에 「말못할 사정」이 생긴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수사결과에 따라 엄청난 상처를 입을 모종의 세력에 의한 외압설이 대두되고 있으며 자금추적에서 검찰 고위간부가 튀어나와 검찰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또 박 의원의 뇌물수수혐의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검찰과 정씨 형제들과의 타협설이 설득력있게 제기돼 이 부분에 대한 해명도 검찰이 덜어야할 짐으로 남아있는 상태다.
검찰이 당초의 공언대로 성역없는 수사를 통해 핵심비호세력 규명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만이 국민들의 비난을 모면할 유일한 방법이라는게 검찰안팎의 일치된 의견이다.<남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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