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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면 남편덕 못되면 아내탓”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잘되면 남편덕이요, 잘못되면 아내탓인가.」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입시부정·부동산투기 등 사회 지도층인사의 잇따른 부정·부패실상이 낱낱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 행위를 주도했다(?)고 하여 「아내」들이 여론의 표적이 되고 있다. 아들을 대학에 부정입학시킨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은 국회의원, 딸들을 부정한 방법으로 대학에 합격시켜 물의를 빚은 대학이사장 등 비리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나는 몰랐다. 모두 아내가 알아서 한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급속도로 가족 해체현상을 겪고 있는 우리사회는 가정주부에게 「집을 지키는일.」외에 막중한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반사회적·비생산적 집단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총수입의 운영관리는 물론 투자와 재산증식·자녀교육·친인척관리 등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화폐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주부의 위상과 가사노동의 가치가 올바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가정:오늘의 문제와 내일의 과제」라는 주제로 24일 대한가정학회(회장 이기음)주최로 열린 춘계학술대회에서는 이같은 가정문제를 다각적인측면에서 진단,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열띤 토론이 벌어져 눈길을 끌었다.
이날 「가정 관리자로서의 가정주부」라는 논문을 발표한 문숙재교수(이화여대 가정관리학과)는 『높은 경제성장을 수행해가는 과정에서 주부는 가족을 위해 과중한 업무를 수행, 이같은 성장을 가능케 한 주역이며 가장의 실질적 부재를 메워줌으로써 가족의 안녕과 사회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원시돼 왔으며 부동산투기·과소비·비밀과외 등 사회부조리가 발생할 때는 공적영역에 있는 남성의 비행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활용돼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문교수는 또한 가사노동에 대한 가치평가에 있어서도 주부는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35세의 주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을때 받는 사망보험금은 3천2백60만1천2백원(90년 기준)으로 장례비와 위자료 등을 제외한 가사노동에 대한 가치를 도시일용근로자의 노임단가인 27만6천원으로 계산한 것이다.
또 지난달 발생한 부산 구포역 열차사고때도 주부에 대한 보상은 일용근로자에 준해 지급되었다.
이는 사적 영역에서 행해지는 가사노동은 그 자체로 상품을 생산하거나 잉여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므로 노동이 수반하는 화폐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는 생각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문교수는 덧붙였다.
따라서 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가치는 재평가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사노동을 파출부등으로 대체할 경우 대체비용을 고려하면 주부의 월평균소득액은 49만7천 9백96원(90년기준산출), 분야별 전문가로 대체할 경우에는 67만6천8백여원으로 계산돼야 한다는것.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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