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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개혁풍향 가늠 부산/“원칙대로 하겠다” 정부예보에 긴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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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하도급비리 개선 등 미리 “먼지털기”/「대기업 소유주 주식제한」될까 걱정
재계를 감돌고 있는 분위기가 갈수록 변하고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풍향」이 바뀐데다 그 바람이 풍기는 「감도」도 5,6공때와는 훨씬 다르다는 것을 재계 스스로가 느끼고 있다.
신정부의 등장이후 이때문에 각 기업들은 촉각을 세워 상황탐지에 바쁘며 일단 상황변화가 감지되면 앞다투어 달려가기에 부산스럽다.
정부와 재계간의 관계에서 최근 가장 주목되는 현상은 「원칙은 원칙대로 적용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이다. 일단 잘못이 생기면 그 근원지에 책임을 묻고 「적당히」란 이제부터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2개월 가까이 노조해체문제로 시끄러웠던 동부그룹이나 철도사고사건의 삼성종합건설이 단적인 예가 되고 있다. 동부는 김준기회장의 노동부출두로 급한 불은 껐지만 아직도 노조가 고소를 취하하지 않고 있고 삼성종건도 사장의 구속이라는 전례드문 경우를 경험했다. 한양역시 신도시아파트 등 잇따른 부실공사 등으로 배종열회장이 경영일선 후퇴라는 카드를 내놓았으나 그것으로 사태가 마무리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재계로선 바빠질 수 밖에 없다. 전경련은 새정부 등장이후 자체내에 자율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최근에는 중소기협중앙회 회장단과 합동회의를 열어 중소기업에 대한 관계재정립과 상당폭 지원을 약속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국제경쟁력의 강화가 최대관건인 현경제상황에서 중소기업의 활로개척이야말로 주요한 하나의 돌파구라는 인식이 그 근본원인이겠지만 달라진 분위기에 화답이라는 면이 강하다.
새정부 자체가 중소기업과 「공생」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데다 하도급부조리나 어음결제문제 등 털것은 빨리 털어 책잡히는 일을 먼저 없애야 하겠다는 것이다.
신정부의 대기업정책도 재계가 또하나 걱정의 눈으로 주시하는 일이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정부가 바뀌면 경제·산업정책도 틀을 재검토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정·재계의 위상도 달라질 수 있다』며 그러나 현재로는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파악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신정부 출범이전부터 이선 저선으로 상당한 교감노력을 해왔으나 과거처럼 감지가 쉽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특히 재계로선 정부가 기업과 오너를 과거정권보다 분리해 생각하는 태도도 신경을 자극하고 있는 모습이다.
김영삼대통령이 최근 신경제 계획위원회 민간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기업의 오너가 주식을 한 5%만 갖고 있으면 안되는가』라는 말에 펄쩍 긴장한 것도 이런 연유다.
새정부의 대기업정책은 작업중인 신경제 5개년계획이 나올 6월말 무렵이면 가닥이 잡히고 재계도 그때쯤이면 「알 것은 알게되는 상황」속에서 나름대로 운신의 폭을 정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향후 5년간의 행동반경을 가늠하기에는 변수가 많고 아직은 이르다는 것이 재계의 생각이다.
사실 경제정책이란 득실의 양면이 강해 어차피 선택이 중요하며 정부라고 해서 항상 「최적의 선택」이라는 자신을 갖기는 어렵다.
이때문에 문제제기와 시비는 언제나 있게 마련이며 여기에 때마저 묻히게 되면 칼끝이 무뎌지리라는 것이다. 재계는 이점을 미리 정부의 재산공개 등 최근의 부정부패 처리과정에서 제기된 선별성의 문제에서 보아왔다. 그렇다고 들고나올 정책들이 모두 폐기처분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시행되더라도 지금까지의 대기업정책과 차별성은 훨씬 줄어들리라는 예상이다.
재계가 진단하는 또하나의 예상은 강한 개혁바람이 지속돼 큰 파고를 몰고오는 일이다. 실제 정부의 최근 정책중에는 정치자금의 고리단절이나 임금안정정책 등 환영할 일들이 적지않다.
과거와의 단절이 문제지만 우리경제의 병인 「고비용 저효율」을 치유하자는 것으로 각 기업 입장에서는 잘만하면 이의 수용여부와 혁신에 따라 재계에 엄청난 지각변동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재계내부에 최근에 같은 대기업이라고 해서 국민의 비판이나 정부의 채찍대상에 한묶음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고개를 부쩍 들고 있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다.
경제의 틀이 바뀌려면 개인이나 기업·정부 등 그 주체가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재계는 요즈음의 변화가 거기에 신뢰를 줘 움직이기에는 아직 불분명하고 그림도 뚜렷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스스로의 개혁도 자신이 꼭 있는게 아니다. 요즈음의 재계가 변화의 방향을 읽기에 부산스러워 하면서도 안으로는 깊은 고민을 거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장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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