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독 "바나나전쟁"|수입관세 싸고 줄다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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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독일사람들처럼 바나나를 좋아하는 국민도 드물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스스럼없이 바나나의 껍질을 벗져 먹는 사람들의 모습은 흔히 볼수 있다.
독일인 1인당 연간 바나나 소비량은 약18kg으로 유럽에서 가장 많다.
이처럼 바나나를 좋아하는 독일인들의 요즘 표정이 밝지 못하다. 이변이 없는 한 7월1일부터 현재 1kg에 2마르크(약1천원)하는 바나나값이 2배인 4마르크로 오르기 때문이다.
이는 EC농업장관들이 최근 브뤼셀에서 그간 회원국간 이해가 엇갈려 논란이 돼온 바나나 수입규정을 최종확정한데 따른 것이다.
그간 EC내에서는 지금까지 바나나를 둘러싸고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계속돼왔다. 바나나를 둘러싼 이같은 신경전의 당사국은 독일과 프랑스로 독일과 입장이 비슷한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독일편이었고 나머지는 프랑스편이었다.
이 바나나전쟁의 역사는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7년 서유럽각국이 EC의 전신인유럽경제공동체(EEC)설립조약을 체결하면서 이른바 「바나나의정서」를 채택, 58년부터 바나나는 무관세로 무제한 수입할 수 있게 됐다.
이후 독일은 중남미로부터 맛이 좋으면서도 잘 썩지않고 가격도 저렴한 이른바 「달러 바나나」를 수입해 왔다.
그러나 프랑스나 영국은 서인도제도·카나리아군도등 식민지로부터 「EC 바나나」 혹은 「식민지 바나나」로 불리는 바나나를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 바나나는 중남미산 바나나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데다 값도 비쌌지만 자국기업이 진출, 생산하는 것이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때문에 그동안 종종 논란이 돼온 바나나문제는 지난1윌 EC시장이 단일화되면서 EC의 현안문제로 부상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프랑스는 영국등을 규합, 「EC 시장보호」란 명분을 내걸고 「달러 바나나」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자는 안을 제출했다. 즉 현재 연간 2백40만t에 달하는 무관세 「달러 바나나」의 수입을 2백만t까지는 kg당 20페니히(약1백원)의 관세를 새로 부과하고 이를 초과하는 양에 대해선 l백80%의 보복관세를 물리자는 것이다. 연간 1백40만t의 「달러 바나나」를 수입하는 독일측엔 사실상 선전포고였다. 그러나 EC농업장관회의는 지난 2월중순 프랑스안을 9대3으로 가결, 독일측에 패배를 안겼다.
이같은 결정에 대해 독일내 여론이 비등하자 독일정부는 벨기에·네덜란드와 함께 룩셈부르크의 EC재판소에 제소하기로 하는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바나나의정서」의 폐기는 EC회원국의 만장일치로만 가능한데다 이같은 결정은 관세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우루과이 라운드 정신에 정면 배치된다고 독일측은 주장하고 있다. 【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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