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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잠적… 고의부도 의혹/카스테레오업체 국제전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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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법정관리속에 매년 매출급증/부무보다 자산많은 점 노린듯
쓰러져가는 회사를 살리려다 실패해 자살에 이른 중소기업주가 한때 줄을 이어 사회문제화되기도 했지만 모든 부도가 그처럼 애틋한 사연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러는 부도로 얻는 반사이익이 회사를 살릴 때보다 더 크다고 판단한 기업주가 부도를 방치하거나 고의로 부도를 내는 경우도 있다. 냉혹한 것이 경제논리라지만 이 경우 기업의 회생가능성과 종업원의 생계를 외면한 처사라는 점에서 기업주의 사회적 책임이 문제가 된다.
법정관리속에서 힘찬 재기의 시동을 걸고 있던 한 중소기업이 졸지에 사주의 외면으로 부도위기에 빠져 있다. 서울 성수동에 본사를 두고 있는 자본금 4억원의 카스트레오업체인 국제전광(법정관리인 고용현). 이 회사는 지난 82년부터 법정관리를 받고 있지만 최근 수출이 되살아나 매출액이 91년 40억원에서 지난해 80억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2백30억원을 바라볼만큼 괄목할만한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사주가 잠적한채 종업원들이 백방으로 뛰면서 연일 은행으로 돌아오는 지급결제를 가까스로 막아나가고 있는 딱한 실정이다. 지난달 30일 이미 1차부도를 냈고 31일에는 가까스로 2차부도를 막았지만 앞으로도 막아야 할 자금이 태산같아 대책이 막막하다.
이 회사의 사주는 얼마전 대한화재 사장 재직중 돌연 사표를 내고 미국으로 출국한 김성두씨(52)와 그의 동생인 김성만 한국유리 부사장(46).
지난 88년 회사를 인수,총주식의 62.4%(특수관계인 지분 포함)를 쥐고 있으며 상당한 자금동원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들 형제가 고의부도를 기도한다는 의혹을 사고있는 연유는 무엇일까.
종업원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두사람은 이 회사가 비록 법정관리기업이지만 부채에 비해 부동산 등 자산이 훨씬 많다는 사실에 착안,부도를 내고 자산을 정리해 한밑천 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회사의 순수부채는 1백40억원이지만 자산은 성수동·인천·이리 등의 공장만 해도 시가 6백억원을 호가한다고 밝히고 있다.
두사람중 특히 형 성두씨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또다른 기업 기성전자의 경영이 악화돼 결국 대한화재의 자금까지 유용했고,이것이 문제되자 지난달 24일 돌연 사표를 던지고 미국으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분은 현재 보험감독원이 조사중이다. 국제전광의 법정관리인인 고사장은 이와 관련,『정리자금이 필요한 형 성두씨는 얼마전까지 회사인수자를 물색했으나 조건이 안맞아 부도를 내기로 선회했다』며 『이 때문에 동생 성만씨 또한 30일까지만 해도 자금을 막아주겠다고 약속했다가 갑자기 잠적해버렸다』고 밝혔다. 김성만씨는 지난달 31일이후 출근을 않고있다.
이에 대해 김성만씨측은 『대주주이긴 하나 경영에 관여한 바가 없고 한국유리는 더더구나 이번 일과 관계가 없다』고 한 측근을 통해 밝혔다.
당사자들의 행방이 묘연해 정확한 진상이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어쨋든 잘나가던 국제전광은 이같은 파문때문에 휘청거리고 있다. 1백80명 종업원의 앞날도 문제지만 이중 10여명의 임원은 회사대출을 입보한 상태여서 부도가 나면 집까지 날릴 판이다. 종업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두 김씨가 회사를 운영할 사람에게 주식을 적당한 값에 넘겨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지금도 인수에 관심을 표시하는 사람이 있지만 두김씨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위기의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정책 및 처방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는 무엇보다 회사를 살려내겠다는 기업가의 의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자기 회사의 부도를 내버려 두는 이같은 사례가 있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이 제시되더라도 누수현상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이재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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