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고 이회림 명예회장을 기리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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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바로 지난주에도 헬스클럽에 나오셔서 운동에 열중하시던 송암(松巖) 이회림(李會林)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께서 18일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새삼 인생무상을 느낍니다. 고인을 따르던 후배로서 애통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적적한 밤에 이 글을 바칩니다.

  당신께서는 생전에 “돼지처럼 벌어서 부처처럼 쓰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시곤 했지요.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과연 이 말이 당신에게 어울리는지 반문했습니다. ‘돼지처럼 번다’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 어떠한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거니와, 이는 제가 아는 송암의 됨됨이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오직 돈을 위해 신용과 의리를 저버린다는 것은 송암에게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당신이 하신 말씀 중 반은 맞습니다. 부처처럼 돈을 쓰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회림육영재단·송도학원·송암문화재단 등을 통해 인재 양성 및 문화예술 지원을 위해 커다란 기여를 하셨습니다. 2005년 6월에는 평생 모으신 문화재 8400여 점과 송암미술관을 인천시에 기증하심으로써 지역 사랑과 예술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당신은 90평생 사업을 영위하면서 ‘상식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것을 철칙으로 여기셨지요.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기본 원리에 충실하다는 것을 뜻하고, 기본 원리에 충실하면 크게 잘못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중용처세(中庸處世)’를 직접 붓으로 써서 사무실에 내건 것은 모두 더불어 사는 지혜를 터득하기 바라는 마음이셨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기업인들에게 그러하듯 송암께서도 수많은 시련과 역경이 있으셨지만, 역경 속에서 더 강해지는 불굴의 의지와 용기, 그리고 한길만을 바라보는 뚝심과 탁월한 경영감각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크나큰 슬픔을 딛고 당신의 유지를 이어받을 것입니다. 이제 당신이 늘 강조하셨던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철학을 따라 지나온 삶의 무게를 내려 놓으시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평안히 잠드소서.

삼가 두 손 모아 회장님의 명복과 영생을 기원합니다.

이세중 <전 대한변호사협회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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