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 든든한 만능해결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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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31면

자동차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별의별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복잡한 도로 위에서 차가 갑자기 멈춰섰을 때의 당혹감이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집에선 아침까지 멀쩡하던 전등이 들어오지 않을지 모른다. 남편 독자들이라면 여러분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던 마누라의 성화를 멋지게 수습하는 편이신가 모르겠다.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은 쓸 만한 공구 하나만 있으면 의외로 쉽게 수습될지 모른다. 우리처럼 난처한 경우를 당해 안절부절못했던 이가 미국의 청년 기술자 팀 레더맨(Tim Leatherman)이다. 그는 1983년 자신의 손재주를 살려 언제 어디서나 쉽게 휴대해 쓸 수 있는 만능 공구를 만들어냈다. 사소한 동기에서 출발한 레더맨은 사용자 입장에서 만든 비상용 공구 하나로 많은 사람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었다.

윤광준의 생활 명품 이야기-다용도 비상공구 ‘레더맨’

칼과 톱·가위 같은 도구의 집합체인 ‘빅토리녹스’는 일상을 벗어난 서바이벌 용품의 성격이 짙다. 하지만 레더맨은 칼과 톱 말고도 그 쓰임이 훨씬 많은 펜치나 플라이어 같은 유용한 기능을 더해놓았다. 일상생활에선 볼트와 너트로 조립된 기계와 전자기기의 활용도가 더 큰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은 부피에 담긴 각 기능은 비상용을 넘어 본격 도구의 역할로도 충분하다.

팀 레더맨은 자신의 간단한 아이디어를 제품화하기까지 7년을 소비했다. 각 기능의 배치와 수납공간의 확보, 강도 높은 재질의 선택을 위해 들인 노력은 집념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나온 결과를 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면엔 한 인간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독한 연구 과정이 담겨 있다. 무엇인가 만들어내는 일은 고통을 먹고 자라는 생물의 메커니즘과 하등 다를 게 없다.

‘레더맨’ 비상공구는 야외 생활과 현장 작업의 예기치 못한 상황을 반전시킨다. 풀린 볼트, 너트와 나사못을 조이거나 갑자기 자가 필요할 때 ‘레더맨’의 각 부분은 마치 변신 합체 로봇처럼 숨겨진 기능을 끄집어낸다. ‘레더맨’은 자체의 기능과 함께 다른 물건과의 보완을 통해 놀라운 쓰임새를 만들어낸다.

20여 년 넘게 돌아다니며 ‘레더맨’ 신세를 톡톡히 졌다. 일상에서 아주 사소해 보이는 트러블이 의외의 복병이 되어 곤란한 경우를 만드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레더맨’ 같은 간단한 도구가 속수무책의 난감함 대신 즉시 해결의 방법을 찾아주니 먹고 사는 일에 이렇게 큰 원군이 달리 없다.
‘나비효과’는 개인의 삶에도 적용된다. 살면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할 상황이 많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다. 이젠 ‘레더맨’ 없이 여행하거나 야외 작업은 하지 않는다. 주머니 속에 든 든든한 ‘빽’의 권능을 확인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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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씨는 사진가이자 오디오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체험과 취향에 관한 지식을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 에세이로 바꿔 이름난 명품 마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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