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퇴장후 복권된 인사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4공 최후 경제수석 이 부총리/5공 숙정바람 맞아 고 건설/행장 거쳐 재무역임 이용만씨/6공시절 재기 화제 추인석씨
새 정부의 두번에 걸친 개각으로 참신한 인물과 복고풍 인사가 「반죽」이 되면서 최근 「복권」된 장관·공인들이 새삼 화제가 되고있다.
이들은 대부분 지난 80년 「서울의 봄」시절 숙정이라는 억울한 오명을 뒤집어 쓰거나 기약없는 퇴임을 하면서 하루아침에 말 못할 사연을 품고 공직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 그간 변화무쌍한 정치권의 부심 끝에 다시 공직에 돌아온,「꺼진 불도 다시 보자(?)」의 주인공들이다.
최근 개각을 통해 다시 등장한 대표적인 복고풍 인사로는 이경식부총리와 고병우건설장관을 들 수 있다. 이 부총리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던 날,청와대 앞뜰에서 새로 입성하는 비서진에 임무를 교대해줬던 4공 최후 「비운의 경제수석」이었다.
이후 공인의 옷을 벗고 대우 등 민간기업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가 자신이 경제수석으로 있었던 시절 함께 일을 하며 인연을 맺었던 이규성 전재무장관의 배려로 금통위원에 선임돼 박재윤 현경제수석 비서관과 함께 「명예로운」금통위원의 직을 나란히 수행하는 인연을 새로 맺었고,이번에 결국 부총리에까지 올랐다. 고병우건설장관은 지난 80년 숙정의 회오리 속에 「인사문란」이라는 억울한 오명을 쓰고 재무부 기획관리실장의 직책을 마지막으로 공인의 옷을 벗었었다.
그러나 당시 고 기획관리실장은 애초 농림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장덕진 전장관이 재무부에 입성하면서 농림부 농정차관보로 밀려갔던 김용환의원(전재무장관)의 총애를 받아 청와대를 거쳐 하루아침에 재무부 재정차관보로 기용됐을 뿐,인사질서를 적극적으로 무너뜨린 인물은 아니었다는 것이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는 재무부의 공론이다.
고 장관은 이후 쌍용그룹에서 일하다 정영의재무장관 시절 증권거래소 이사장으로 「준복권」돼 자신에 대한 평가를 새로 쌓아오던중,이번에 전북 출신인 허재영 전건설장관의 뒤를 이어 역시 전북 출신의 건설장관으로 기용돼 「완전복권」됐다.
고 장관과 함께 80년 서울의 봄 시절 같이 옷을 벗었던 이용만 전재무장관의 「인생역정」도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이 전장관은 당시 전두환대통령의 처삼촌이었던 이규광 광진공사장이 재무부로 인사차 업무협의를 겸해 들렀을때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회의를 하느라 오래 기다리게 했다가 「괘씸죄」에 걸려 청와대로 가는 숙정대상자 명단에 제일 마지막으로 오르게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전장관은 이후 특유의 집념으로 이 광진공사장의 「오해」를 풀었고 이에 따라 정부 기록상 당시의 숙정대상자 명단에서 삭제된 유일한 인물이 되었으며,또 금융기관장으로 준복권 되는 최초의 인물이 됐었다.
이후 이 전장관은 끈질긴 집념으로 마침내 자신이 쫓겨났던 재무부의 장관자리에 오르는 완전복권을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내고 만다.
추인석 현금통위원도 6공시절의 복권인사로 빼놓을 수 없다.
한은 이사시절 자신도 모를 이유로 옷을 벗어야 했던 추씨는 이후 6공들어 정치판의 판세가 바뀌면서 선대부터 사제지간이나 다름없이 얽힌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최고위원과의 인연을 바탕으로,당시 박재윤금통위원(현경제수석)의 후임을 맡아 세간의 화제가 됐었다.
이처럼 복권되는 인사들의 사연을 되짚어 보면 새삼 「무상」을 느낄 수 있지만,그래도 최근 거듭되는 복고풍 인사를 두고「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유행어가 돌고있는 것이 역시 어쩔 수 없는 세상 인심이다.<김수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