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 전 미국 대통령 부인 ‘레이디 버드’ 타계 자연보호 운동 한평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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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캘리포니아 시미 밸리에서 열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 개관식에 참석한 레이디 버드 존슨 여사(앞줄 맨 왼쪽)와 전 퍼스트 레이디들. 낸시 레이건(뒷줄 왼쪽부터), 바버라 부시(당시 퍼스트 레이디), 팻 닉슨(앞줄 왼쪽 둘째부터), 로살린 카터, 베티 포드 여사. [시미 밸리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36대 대통령인 린든 존슨의 부인 클로디아 레이디 버드 존슨 여사가 11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94세. 존슨 전 대통령 가족들은 “레이디 버드 여사가 텍사스 오스틴의 자택에서 가족,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명했다”고 발표했다. 2002년 뇌졸중이 발생해 언어장애를 겪어 왔었다. 남편인 존슨 전 대통령은 1973년 심장마비로 숨졌다.

레이디 버드(Lady Bird)의 원래 이름은 ‘클로디아 알타’. 이 별명은 그녀가 어렸을 때 유모가 “무당벌레(ladybird)처럼 예쁘다”며 지어줬다.

 그녀는 자연과 환경을 사랑한 퍼스트 레이디였다. 텍사스 출신인 그녀는 백악관에 입성하자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들꽃을 경내에 퍼뜨리는 일에 앞장섰다. 1965년 고속도로 주변에 너절하게 널려 있던 광고판과 쓰레기장을 정비하고, 도로 옆에 나무와 들꽃을 심기 위해 3억2000만 달러를 투자하는 ‘고속도로 미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도 했다.

그녀는 법안 통과를 위해 수 많은 연설과 의원 상대 로비도 열심히 했다. 그래서 발효된 그 법은 지금까지 ‘레이디 버드 법’으로 불린다. 그녀는 1982년 70세 생일엔 유명 여배우 헬렌 헤이스와 함께 ‘전국 들꽃 연구센터’(이후 ‘레이디 버드 들꽃 센터’로 개칭)를 텍사스 오스틴 근처에 설립했다. 그리고 들꽃과 식물 보존을 위한 연구를 지원했고, 그 공로로 ‘자유의 메달’도 받았다.

레이디 버드는 내조를 잘 한 퍼스트 레이디로도 유명하다. 남편이 1937년 연방 하원의원에 출마하자 친정 아버지에게 1만 달러를 빌려 선거운동 비용으로 썼다. 고교 시절 졸업식 연설이 두려워 수석졸업 메달상을 받지 않을 정도로 내성적이던 그녀는 남편이 대선에 출마하자 나흘 동안 47번의 연설을 한 기록도 있다.

그녀는 만난지 이틀 만에 2달러 25센트 짜리 반지를 내밀며 결혼하자고 조르던 남편이 결혼후 오랫동안 다른 여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걸 알면서도 꾹 참고 가정을 지켰다. 남편의 바람기에 대한 질문에 “린든은 사람을 사랑했다. 그런데 사람의 절반은 여자이지 않느냐”고 답한 일화는 유명하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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