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운 걸린 앞으로 3∼5년(성병욱 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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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만이 수출 1백억달러 고지에 오른건 지난 78년이었다. 한국이 수출 1백억달러를 달성한지 한해 뒤였다. 그때만해도 수출전선에서 간발의 차나마 우리가 앞서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91년 확정치로 대만의 수출은 7백61억달러인데 비해 우리는 7백18억달러로 뒤져 있다. 그 격차보다 더 심각한건 무역의 내용이다. 그해 우리는 무역에서 97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대만은 오히려 1백32억달러의 흑자를 거뒀다. 그러다 보니 그해 대만의 외환보유고는 8백83억달러인데 우리는 1백37억달러밖에 안된다. 작년 대만의 외환보유는 드디어 1천억달러대에 들어서 세계 2위의 외환보유국이 됐다.
○수출경쟁력 날로 약화
국민생활수준의 지표이기도 한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가 6천4백98달러,대만은 8천8백15달러다.
대만은 면적이 남한의 3분의 1,인구는 4할밖에 안된다. 심각한 안보상황은 우리와 마찬가지고 정치의 민주화는 우리가 앞서 있다. 우리가 별로 뒤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무역경쟁에서 우리는 같은 신흥개발국이었던 대만에 뒤처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볼 때에도 냉전체제의 붕괴에 이은 대국의 경제패권주의와 EC,NAFTA 등 블록화현상은 우리에게 엄혹한 경제환경을 강요하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리우환경회의 등 개방 및 환경공세에 겹쳐 미국 등 강대국의 보호무역주의적 무차별 통상공제의 파고가 우리를 옥좨온다.
그뿐만이 아니다. 후발개도국들의 추월공세 또한 만만치 않다. 중국과 동남아의 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이 싼 임금을 무기로 우리의 중저가수출시장을 잠식해 들어 오고 있다. 중국의 저가상품은 국내시장까지 무차별로 파고 든다.
지금의 우리경제는 대외적으로 마치 앞과 옆과 뒤에서 삼각파도를 맞고 있는 형세다. 우리가 지난 60년대 경제개발드라이브를 시작한 이래 최대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봐야한다.
○국민적 위기의식 긴요
그런 의미에서 오는 25일 출범하는 김영삼차기대통령 정부는 위기의시대,위기의 경제를 물려받게 된다. 실제로 앞으로 3∼5년은 우리의 국운을 좌우하는 중요한 시기다. 선진국 대열에 오르는 기틀을 쌓느냐,선진국 문턱에서 삼류국으로 좌절하고 마느냐가 판가름난다.
우리가 처해진 대외여건이 엄혹하다면 이 위기를 타개하는 길은 우리 내부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아직 그 태세가 안돼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6·29이후의 임금상승으로 그때까지 수출경쟁력의 기초였던 「저임의 이익」이 사라졌다. 임금이 높아졌더라도 노동의 질과 강도,다시말해 생산성이 높아졌다면 문제는 덜 심각하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6·29이후의 잦은 노사분규와 흐트러진 사회분위기로 일은 덜하면서 많이 받고 많이 놀자는 풍조가 심화된게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선진국처럼 낮은 가격경쟁력을 커버할만큼 기술경쟁력이 높은 것도 아니다. 거기에 도로·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의 턱없는 부족,기업의 창업과 활동에 대한 숱한 법적·행정적 규제,금융의 애로 등은 원가상승요인으로 작용해 우리 상품의 국제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 몇년 더 자각없이 진행되면 어느 기업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경제,우리나라가 큰 일날 판이다.
새 정부의 지도층은 우리가 당면한 이러한 위기의 실상을 우선 투철히 인식하는게 급하다. 그러고나서 국민들에게 그러한 인식이 고루 확산되도록 해야한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어려움은 정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기업·근로자를 비롯해 모든 국민이 힘을 합쳐야 될 일이다.
지난 30년 경제기적을 일으켰던 때의 정열을 되살려 모두가 과감하게 발상을 바꾸고 열심히 매달려야 한다.
잘 되는 선진국은 단순히 기술력·생산력 등만 우리보다 앞선 것이 아니다. 일하는 자세,최선을 다하는 정신에 큰 차이가 있다. 독일이나 미국 등 선진국의 사무실에서는 근무시간중에 잡담을 하거나 개인 일을 보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짧은 휴식시간을 정해놓고 근무시간중에는 업무에 몰두한다. 일본의 공장에선 출근시간이 일을 시작하는 시간이고 퇴근시간이 끝나는 시간이다. 우리같이 근무시간중에 작업을 준비하거나 퇴근을 준비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일하는 자세 바뀌어야
모두가 이렇게 최선을 다 해 열심히 일하도록 분위기와 여건을 만드는 건 정부와 지도층의 몫이다. 특히 정부는 각종규제 등 국제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소를 과감히 고쳐 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국제경쟁력 마인드의 체질화가 중요하다. 국내경제만을 놓고 보면 합당한 것 같던 정책이 국제경쟁력을 저해하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몇년전까지는 그래도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같이 국내외시장이 모두 개방화되어가는 상황에선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앞으로 3∼5년 온국민이 위기의식을 나눠갖고 분발토록 하느냐,못하느냐에 새 정부의 성패와 국가의 장래가 걸려 있다.<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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