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3 그랑프리 '코리안 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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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단군, 광개토대왕, 안창호.

한국 위인들의 이름이 붙은 레이싱 머신(경주용 차)이 7일 밤(한국시간) 독일 뉘르부르크의 뉘르부르크링에서 벌어진 ATS F3 그랑프리 레이스 4라운드 1차전에서 1위(25분10.658초)로 골인했다. 8일 2차전에서는 2위를 했다. 굉음 속에서 손을 번쩍 치켜든 이 머신의 레이서는 리카르도 브루인스 최(22.사진). 여권상에는 리카르도 브루인스라는 네덜란드인이지만 F3 조직위에 이 선수의 이름은 리카르도 브루인스 최 또는 최명길이다.

최명길은 한국인 입양아다. 생후 4개월 되던 1985년 네덜란드로 입양을 떠났다. 스무 살이 되던 2005년 크리스마스 때 한국인 모임에 나갔다가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인이라는 것이 혼란스러웠지만 한국이 나를 버린 나라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나라라는 신념을 가지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헬멧에 한글 이름 '최명길'과 태극기를 새기고 출전했다. F3 조직위에 자신의 국적도 한국으로 바꿨다. 머신을 무궁화 색깔인 핑크빛으로 칠했으며 한국 출신 위인들에 대해 알아보고 그중 마음에 드는 이름들을 골라 자동차에 새겼다고 했다.

최명길은 양아버지를 따라 만 5세부터 카트를 통해 자동차 경주의 세계에 자연스레 입문했다. 19세이던 2004년 포뮬러 르노 대회로 공식 데뷔했고 지난해 F3에 입문, 종합 7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뒀다. 신인이 10위 이내에 들기는 쉽지 않다. 올해는 종합 점수 47점으로 4위며 '판 아메스푸르트 레이싱'팀에 소속돼 있다. 최명길은 전 세계에 22명뿐인 F1 레이서를 꿈꾸는 F3의 유력한 카레이서가 됐다. 한국인 레이서 가운데 F3 단일 대회에서도 10위 이내에 든 선수는 없었다.

1위로 골인한 최명길이 손을 들며 기뻐하고 있다. 단군 등 한국 위인들의 이름이 최명길의 머신(경주용 자동차)에 새겨져 있다.[TMI 제공]


그래서 그를 한국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2010년 전남 해남에서 국내에선 처음으로 F1 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열리는 F1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한국인 후보라고는 현재로선 최명길뿐이다. 최명길은 우승 후 전화 통화에서 "이번 우승을 계기로 독일 F3 종합 챔피언에 오르고 모터스포츠의 월드컵으로 불리는 국가 대항전 A1 그랑프리와 최고의 무대인 F1 그랑프리에 진출하고 싶다"고 했다. 또 "2010년 한국에서 열리는 첫 F1 경주에서 1위로 골인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최명길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박현주 TMI 인터내셔널 대표는 "이번 우승으로 최명길이 F1에 오를 수 있는 실력이란 것은 인정받았다. 그러나 F1 선수는 실력뿐 아니라 거액을 후원할 스폰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이경태 인턴기자

◆F3=머신(경주용 차)을 이용한 자동차 경주 시리즈. F1은 엔진 배기량을 2400㏄까지, F3는 2000㏄ 이하이며 최고 시속이 F1은 350㎞, F3는 280㎞ 정도다. F3는 F1으로 가는 등용문 역할을 한다. 지역별로 여러 시리즈가 있으나 최명길이 출전한 ATS 시리즈는 F3 중 메이저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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