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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탓할 수밖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7호 13면

“저 위의 누군가가 날 좋아하나 봐.”
이 말은 4월 11일 타계한 컬트 문학의 우두머리 커트 보니것의 소설 『타이탄의 마녀들(Sirens of Titan)』(이 소설의 또 다른 번역본 제목)에 나오는 구절이다. 억세게 운이 좋아 덴버주 전체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진 억만장자 맬러카이 콘스탄트가 누군가 자신이 가진 행운에 대해 묻자 “글쎄요, 저 위의 누군가가 날 좋아하나 보죠, 뭐”라고 대답한다. 난 인생의 행운에 대해 이보다 더 멋진 설명이 없다고 생각한다.

소설가 천명관의 시네마 노트

스타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다. 그들이 가진 행운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스타는 종종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그리고 스타가 되기 전에 얼마나 어려운 시기를 보냈는지에 대해 얘기한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것은 그가 스타가 된 데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아니, 조금의 설명도 되지 못한다. 그렇지 않다면 알코올 중독에 노출증 환자인 패리스 힐튼에게 찾아온 그 멍청하고 어처구니없는 행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물론 알코올과 노출증이 무조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패리스 힐튼을 좋아한다).

한 여배우가 있다. 그녀는 게으르고 자기중심적이며 지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패션지조차 어려워 잘 읽지 못한다. 촬영 현장에선 새벽 여섯 시에 집합한 오십여 명의 스태프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전화해도 받지 않는다. 급기야 제작부장이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녀는 새벽까지 친구들과 술을 먹다 숲 속의 공주처럼 곯아떨어져 있다. 매니저가 깨우자 겨우 일어나 깨지락거리며 밥을 한 숟가락 먹고 대충 수습해 현장에 도착한다. 그러는 동안 다섯 시간이 흘렀다. 스태프는 모두 지쳤다. 자신의 일에 회의도 느낀다. 그들은 ‘이참에 영화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부동산 중개업 면허나 따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녀는 감독이나 스태프에게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예쁘다는 년들이 으레 지어 보이는 포즈’로 고개만 한 번 까딱하고 일억원짜리 밴 승용차 안으로 사라진다. 그녀만의 특별한 연기력이 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연기와 포즈를 구분하지 못하고 십 년 넘게 ‘책 읽기’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정상에 서 있다.

누구 얘기냐고? 특정한 개인의 얘기는 아니다. 그리고 모든 배우가 다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와 비슷한 경우를 많이 알고 있다. 그러니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식의 환상은 말 그대로 환상일 뿐이다. 그들은 대중이 원하는 외모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갖고 태어났을 뿐이다. 무수한 결함은 그 매력에 의해 모두 가려진다. 그들이 머리가 좋건 나쁘건, 인간성이 좋든 나쁘든, 또는 변태이든 말든 대중이 그들을 선택한 바에야!
하긴 태어날 때부터 수천억원의 재산을 보장받고 태어난 재벌가의 자손에 비하면 이들이 가진 행운은 매우 미미한 정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설명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혹, 이 때문에 속상하다면 어쩌겠는가. 하나님한테 감자나 한번 먹이는 수밖에.
‘예끼, 여보슈! 배급이나 좀 똑바로 하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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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씨는 충무로에서 오랜 낭인생활 끝에 장편소설 ‘고래’로 등단한 뒤 소설과 연극, 영화와 드라마 등 온갖 이야기 예술에 관심이 많아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단 소설가입니다.

■ 천명관씨의 시네마 노트는 이번 호로 마칩니다. 옥고를 보내주신 작가께 감사드립니다. 뒤를 이어 소설가 천운영씨가 이 난을 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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