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주주의, 주주에 의한 자본주의를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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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증시가 바짝 달아오르고 있다. 시가총액은 가볍게 1000조 원을 돌파했다. 개인 투자자들이 꼬리를 물고 증시로 밀려든다. 89년 깡통계좌의 좌절과 2000년 코스닥 거품 붕괴에 덴 상처는 벌써 까맣게 잊은 듯하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시의적절하다. 책 제목은 무언가 선동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의 정수는 자본이고, 자본의 주인은 주주라는 점을 미국 기업 사례를 들어 풀어갔다.

특히 증시와 펀드산업의 산 증인이자 세계 최초로 인덱스펀드를 만든 지은이는 투기의 근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주주 자본주의 원리가 지켜진다면 ‘묻지 마’ 투기는 일어날 수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러나 거대한 증시에서 어느 틈엔가 주주는 주인의 자리에서 밀려났다. 대신 경영자가 ‘운전석’을 차지했다. 경영자의 자질은 주가로 평가됐다. 경영자에게 주어진 엄청난 스톡옵션도 ‘주가 부풀리기’를 부추겼다. 회계조작을 통한 실적 뻥튀기, 그럴 듯하게 포장된 초대형 개발 프로젝트, 기업 인수ㆍ합병(M&A) 루머, 신경제에 관한 막연한 환상. 주가를 튀길 수 있는 호재라면 뭐든 증시에 유포됐다. 기관투자가도 덩달아 춤을 췄다.

하지만 경영자와 기관투자가, 펀드매니저의 공모는 오래 못 갔다. 엔론을 시발로 신경제의 선두주자였던 월드컴ㆍ타이코가 잇따라 파산했다. 경영진은 회계 부정으로 철창 신세를 졌다. 한국에서도 비슷했다. 2000년 닷컴 신데렐라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남은 회사는 몇 안 된다. 일확천금의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한 번쯤 글쓴이의 충고에 귀 기울여도 좋을 듯싶다. 국내 상황과 비교해가며 읽으면 더 재미있겠다. 전문용어를 풀어 설명해놓은 옮긴이 주석이 많은 것도 어려운 내용의 책을 쉽게 읽히게 한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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