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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비리·황금만능 결국 상통"|『완장』속편 연재시작 윤흥길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감시원 완장에서 나오는 힘으로 갖은 행패를 부리는 한 시골 저수지 감시원을 통해 권력의 병을 캐 보려 한 것이 10년 전 발표한「완장」이었습니다. 무소불능의 그 권력지향형 완장에 이제 돈까지 곁들여져 세상이 뿌리째 썩어 가고 있습니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힘을 잡으려는「완장 병」. 왜곡됐던 권력구조도 문제지만 이 완장 병은 도저히 숭상의 대상이 될 수 없는「능률」같은 형이하학적인 것을 절대가치로 가르친 잘못된 교육이 낳은 것으로 윤흥길씨는 본다.
『교육에서부터 가치관이 무너지니 사회전체가 부끄러움을 전혀 모르는 도덕적 불감증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사회 양심의 보루라 할 수 있는 종교·교육계에서 벌어진 휴거소동·입시부정 등은 우리시대「완장 병」의 환부를 단적으로 드러낸 예로 볼 수 있습니다.』
작가 윤흥길씨(51)가『완장』속편 연재에 들어간다. 전편을 탈고한지 꼭 10년만에『현대문학』3월 호부터「빛 가운데로 걸어가면」이란 제명 하에 매달 2백∼3백장 분량, 12회 총2천5백장 가량으로 완성될 이 작품은 전편 주인공들이 상경,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날뛰다 파멸돼 가는 과정을 그린다.
전편에서 저수지 감시원 종 술과 술집작부 부 월을 내세워 농촌정서를 깔면서 권력의 하부구조로「완장」을 풍자했다면 속편에서는 돈을 완장에 대입시키며 경제현실과 도시인의 정신적 공황의 근원을 캐게 된다.
『휴거가 극성을 부릴 때 기독교도들 사이에서는「천당 가는 지름길」「신앙 중에서 가장 수지맞는 선택」이란 말들도 떠돌았습니다. 믿음도 이제 지름길 찾고 편법을 좇는 시대가 돼버린 것일까요.
아무튼 종말론이 판치는 병든 분위기 속에 도둑놈·도둑 년과 진배없는 종술과 부월을 풀어 놓아 보겠습니다. 물 만난 고기처럼 마냥 휘젓고 다니며 난장판에서 한몫 짭짤하게 챙기려는 그들의 뒤를 해학으로 뒤쫓아가 보려 합니다. 그러면서「돈이면 다 된다」는 아픈 우리의 경제·사회현실을 드러내 보이겠습니다.』
자칫 통속 세태소설로 흐르기 쉬운 이러한 소재를 윤씨는 한국 정통소설 미학인 해학으로 헤쳐 나가겠다고 한다. 세태에 문학 스스로 편승, 독자의 말초적 신경이나 자극하고 오히려 도둑놈·도둑 년에게 동화돼 가는 통속소설이나 깨진 얼음장같이 차고 날카롭게 현실의 환부만 드러내는 리얼리즘 소설을 해학으로 동시에 극복, 인간미 넘치는 재미와 감동적 메시지를 함께 전하겠다는 것이다.
『문학 역시 완장 병으로 썩어 가고 있습니다. 상품시장인 독자와 영합,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돈을 얻으려는 경제원리에 문학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본격 문학」과「상업 문학」이 엄격히 구분돼야 합니다. 쓰는 쪽이나 읽는 쪽 모두 엄격치 이 둘을 구분해 쓰고 읽게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본격문학만 고집해온 작가로서도 어쩔 수 없이 상대적 빈곤 감을 느낀다는 윤씨는 그래도 미와 진실을 추구하는 고양된 정신세계인 문학에 경제원리가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전통적 선비 관에 입각, 티없는 정신과 혼을 파는「문사」들을 상업문학이나 소녀취향문학과 구분 없이 어우러지게 하는 시장경제원리 아래선「문사」들이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이 윤씨의 말을 통해 뼈저리게 느껴진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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