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사퇴 모두 "타의" 찜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차기 축구협회장을 뽑는 대의원총회를 하루 앞둔 11일 회장 경 선에 나섰던 김창기(59· 한양대체육실장)전 대학축구연맹회장의 돌연한 사퇴 표명에 대해 축구계는 떨떠름한 표정이다. 8일 경기인 대표로 회장 경 선에 뛰어들었던 김씨가 불과 사흘만에 이를 번복한 것은 진의야 어떻든 간에 경기인 출신의 한계를 보여준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기 때문이다.
사실 김씨가 뒤늦게 막강한 재력의 정몽준(42·현대중공업 고문)국민당의원과 맞서 회장 경 선에 나선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뜻만은 아니었다. 이보다 라이벌 현대 측에 선선히 회장직을 넘겨줄 수 없다는 대우 측의 강한 거부감에 편승한 것이라는 시각 또한 부인하기 힘들다. 따라서 김씨의 갑작스런 사퇴 표명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축구협회장 인선을 둘러싼 회오리가 축구계에 몰아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김우중 회장이 사업상 이유를 들어 퇴진 의사를 공식화하면서 표면화됐다.
이와 때를 같이해 정 의원이 느닷없이 회장 출마를 선언했고 이 과정에서 정 의원은 김 회장의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항간에선 대우-현대의 불편한 관계를 의식, 김 회장의 유임 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서 김씨가 대우 측의 재정지원을 내세워 회장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축구계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된 것(당시 김씨의 회장 경선 참여는 정치권의 외압에 의한 대리 전쟁에 나섰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대의원총회가 다가오면서 회장 경 선에 대비, 대의원(총 22명) 들에 대한 중간 검표결과 대세에서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급기야 축구인 대화할 차원에서 경 선을 포기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정 의원 측은 오랫동안 사전정지작업을 펴 와 상당수의 대의원을 확보해 놓은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엔 거중조정에 나선 김 회장의 역할 또한 배제할 수 없다. 9일 해외사업을 끝내고 귀국한 김 회장은 서둘러 3자 모임을 주선, 그 동안의 관례를 들어 한쪽의 양보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같은 사실은 11일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확인됐다.
이에 따라 김씨는 11일 오전 정 의원과의 단독대좌에서 경선 포기 의사를 밝혔으며 이에 대해 정 의원은 사심 없는 협회 운영으로 한국 축구 발전에 헌신하겠다는 뜻과 함께 김씨의 협조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종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