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 47일만에 첫 참치 … 국민의 희망을 낚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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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승만 대통령이 1957년 10월 7일 경무대 뜰에서 지남호가 잡은 참치 를 놓고 기념촬영을 했다. 심상준 제동산업 사장,김현철 재무부장관, 이 대통령, 이스트워머 유엔환경계획(UNEC) 조정관, 송인상 부흥부장관, 다우링 주한 미대사, 지철금 상공부 수산국장(왼쪽부터).[원양어업협회 제공]

“망망대해에서 한 달이나 허송세월하다 어른 키 만한 참치가 물 위로 떠오른 그날의 감격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잊질 못해요.”

 한국 원양어업 50주년을 맞아 27일 오후 부산 그랜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윤정구(80.전 오양수산 사장.上)씨.

 윤씨는 참치를 잡겠다며 1957년 6월 29일 부산항을 떠난 제동산업 소속 지남호(指南號.250t급)의 초대 선장으로 한국 원양어업의 산증인이다. 그는 “출항식에서 원양 시험조업을 국가의 명령으로 알고 기필코 성공해 돌아오겠다고 인삿말을 했다”고 기억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남쪽으로 뱃머리를 돌려라’는 의미로 이름까지 직접 지어준 지남호는 한국전쟁의 상흔에서 신음하던 국민에게 신선한 희망을 안겨줬다고 한다.

 원양어업 개척길은 험난했다. 17명의 선원 가운데 참치를 구경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미끼 끼우는 방법도 책을 보고 연구했다.

 7월 18일 대만 해역에서 처음 낚시를 드리웠으나 실패였다. 필리핀과 싱가포르 근해로 옮겨 시험조업을 계속했으나 빈 낚시바늘만 올라왔다.

 윤씨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같아 며칠 동안 잠을 못잘 정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졌던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싱가포르의 한국무역진흥회사로부터 2500달러를 빌려 연료와 식품을 보충한 지남호는 8월 11일 인도양으로 떠났다. 니코발 아일랜드 해역에 도착한 지남호 선원들은 15일 오전 5시쯤 동경 94도 29분, 북위 7도 49분 해역에서 윤씨의 지시에 따라 낚시를 던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또 빈 낚시만 올라왔다.

어느 순간 '와'하는 함성이 들려 뱃전으로 달려가보니 어른 키만한 참치 한마리가 올라왔다고 한다. 부산항을 떠난 지 47일 만이었다. 지남호는 이날 0.5t짜리 참치를 잡은 것을 시작으로 모두 10t의 참치를 잡고 97일 만인 10월 4일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지남호의 조업성공 소식은 외신으로 국내에 전해졌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지남호 선주인 제동산업 심상준 사장을 경무대로 불렀다. 심 사장이 비행기로 공수한 참치는 경무대에서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는 '영광'을 누렸다. 동원그룹 김재철(70) 회장은 당시 지남호의 보조 항해사였다.

 지남호의 성공은 남태평양 참치어장 개발의 신호탄이 됐다.

 윤씨는 58년 1월 다시 지남호를 타고 남태평양 사모아 근해로 나가 1년 3개월 동안 참치 100t을 잡아 한국 원양어업의 전성기를 열기 시작했다.

 윤씨는 “당시 부산의 경기는 원양어업이 주도해 남포동·광복동은 바다 사나이들로 넘쳐났었다”면서 “원양어선 선장으로 한번 바다에 나갔다 오면 집이 한 채씩 생긴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선원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며 크게 웃었다.

 그는 “식량주권 차원에서 원양어업이 더욱 활성화 됐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수산대(현 부경대)를 졸업한 윤씨는 73년 고려원양으로 옮겨 상무와 부사장을 역임한 뒤 85~95년 오양수산사장으로 재직했다.

 윤씨와 지남호 지도관이었던 이제호(79) 전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원은 27일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원양어업 50주년 국제심포지움’에서 강무현 해양수산부장관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강진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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