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정의 골 어찌 메우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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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통령선거 득표상황을 지켜보면서 지역감정이 개선되기는 키녕 여전히 깊게 패어있음을 우리는 또한번 절감했다. 지역감정이 상존하는 한 호남출신 후보는 대통령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슬픈 현실도 이번 선거를 통해 또한번 확인했다.
비록 선거운동 기간중에는 양후보의 자제노력으로 표출된 지역감정의 대결은 보이지 않았지만 잠재된 지역감정은 조금도 흔들림없이 고스란히 선택의 결정으로 나타났다. 부산·경남에 이어 대구·경북도 김영삼후보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보였고 특히 대구에선 김대중후보가 4위에 머무르는 저조한 득표를 나타냈다. 이에 비해 호남은 김대중후보의 압도적 지지를 보이면서 광주는 95%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나타냈다.
대통령후보가 어느 계층을 대변하고 어떤 정책을 내세웠느냐에 따라 표의 향방이 결정되어야 할터인데 87년에 이어 이번 대선 결과도 어느 지역을 대표하느냐로 판가름났다. 부산의 노동자든,광주의 중산층이든 아무런 계층별 정책적 차별없이 그저 지역연고에 따라 후보를 결정한 결과일 뿐이다.
이 결과는 국민들의 잠재된 의식 깊은 곳에 아직도 지역감정의 골이 깊게 패어있다는 증좌가 된다. 잠재된 지역감정이 선거 이후에도 계속될때 영남사람들은 득의만면하게 되고 호남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좌절감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래서야 어찌 정치의 선진화와 새로운 민주주의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경계하면서 넘어서야할 대목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의에 빠진 호남 유권자를 어떻게 하면 문민시대의 정치적 참여세력으로 적극 유도해 좌절감을 치유할지,뿌리깊은 영호남간의 지역감정을 어떻게 원천적으로 해소하느냐에 중지를 모아야 한다.
이른바 TK세력에 이어 이제 다시 부산·경남의 신 PK세력이 정치 엘리트로 급부상하는 전철을 밟는다면 이땅의 지역갈등은 영원히 해소할 수 없는 절대절명의 사회위기로 파급될 것이다.
이런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권력 엘리트의 합리적인 물갈이와 고른 인재등용,그리고 균형있는 지역경제 발전이 우선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영호남인 스스로 이번 선거를 계기로 지역감정의 볼모에서 해방되는 부단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
문민시대의 신한국인을 역설한 김영삼대통령당선자가 가장 먼저 착수해야 할 큰 문제중의 하나가 지역감정으로 판가름난 이번 선거의 결과를 어떻게 치유하고 감싸 안느냐에 있다고 우리는 본다. 오랜 세월의 양김대결 구도도 영호남 지역갈등을 깊게한 요인중의 하나였다고 생각한다면 그 대결의 골을 메우고 화합의 길을 모색하는 작업 또한 김영삼당선자가 맡아야할 중차대한 몫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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