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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한국인(11·끝)|주인 의식으로 일군 「기술의 1인자」|우리사회의 버팀목 92년 명장 24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결코 화려하지 않으나 이 사회에 없어서는 안될「빛과 소금 같은」사람들. 자신의 본분을 지켜 맡은 일에 묵묵히 최선의 노력을 쏟는 이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보다 안정감을 지닌 편안한 삶터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정부(노동부산하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가 올해 선정한 24명의 「92년도 명장」들은 각분야 최고의 기능인들로 전 생애를 통해 국가기반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 온 사람들이다.
이러한 기능인들의 자부심과 긍지를 고취시키고 우대하는 풍토조성을 위해 정부가 작년에 이어 지난 10월 엄격한 절차를 거쳐 선발한 이들 명장들은 모두 20년 이상 투철한 장인 정신, 불굴의 의지로 한길에 매진해 한국경제의 견인차가 되어왔던 「우리시대 최고의 일꾼들」.
이들은 전국의 기업체에서 선발된 후 다시 해당 시· 도의승인을 거쳐 전문가들로 결성된 기능장려공적심사위원회의 엄격하고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한 사람들이다.
29년간을 기계가공의 한길에 종사해온 유삼수 주임(50·기아자동차)의 경우 자동차부품의 국산화와 설비자동화 등으로 자신이 몸담은 회사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쏟아내 회사에서 20∼30여 차례 「제안상」을 타기도 한 그는 73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국산가솔린엔진(1천cc)을 개발해 브리사자동차 탄생의 산파역할을 해 낸 장본인.
1급 용접기능사로 23년간 한 분야에서 뛰어 온 김응순씨(52·현대정공)는 74년 한국최초로 26만t급 유조선 12척을 건조해 내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며 탱크· 88전차· M48전차 등 무기제작 및 개조를 통해 한국 방위산업발전에도 큰 몫을 해 냈다.
또 그는 84년 디젤기관차의 거대한 엔진이 올라앉는 대거 프레임을 국산화하는데 성공해 막대한 외화절감과 능률향상에 기여했다.
대림산업의 중기정비반장인 김춘기씨(53)는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28년간을 수입장비국산화에 전력, 산업발전의 원동력이 돼왔다.
그는 70년대 건설장비들을 거의 수입해 써오던 시기에 정비업무에 뛰어들었다. 당시 장비의 고장수리 시 모두 외국기술자의 손에 맡겨야 하는데서오는 시간과 비용의 막대한 낭비를 절감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중고부품의 개조, 수리를 통해 이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는데 큰공을 세웠다. 그가 중고부품을 개조, 국내에 없었던 콘크리트포장장비를 2개월여만에 제작해내 고속도로 건설공사에 투입했던 것이 그 예.
당시에는 이 장비를 외국에서 수입해 들여오는데 만도 6개월이 소요되는 실정이었다는 것.
강원도 태백산골 막장에서30년간 석탄을 캐온 장성광업소 홍순명 갱장(54·장성광업소) 은 새로운 방식의 채탄법을 개발함으로써 낙방, 붕괴 등의 재해를 줄이고 원활한 통풍을 가능하게 해 막장의 온도를 저하시키는 등 열악한 작업조건과 싸우는 동료들의 안전확보에 공을 많이 세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홍일점 명장으로 완초공예계의 1인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순자씨(43·서울 삼성동 112의 2)는 완초공예 품재질 향상을 위해 완초를 다각도로 실험재배하는가 하면 종래의 전통기법을 응용, 각종 무늬 넣기 등을 새롭게 창출해 한국의 멋을 극대화시키는 쉼 없는 노력을 경주해 온 사람이다.
또 전주의 특산품인 태극선을 매년 l0만개씩 48년간을 만들어 조상의 멋을 이어오는데 바쳐온 방춘량씨(65·전북 전주시 덕진구 가내공업센터),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조 목가 구 제작에 빠져 26년간 한눈을 팔지 않고 한길을 걸어온 소병신씨(40· 전북 전주시 홍익목공가구)도 마찬가지.
이들 외에도 광산보안부문의 김정동씨(54·함백광업소), 제강의 김종식씨(49·강원산업), 전기공사부문에 김광식씨(47·연합철강공업)와 정대원씨(42· 한국담배인삼공사), 양복기술부문에 이태신(63·이태신양복점), 금위수(47·삼성물산), 문병지(48· 맨숀양복점)씨, 고압가스기계부문의 정규영씨(40·조선맥주), 기계조립부문의 이민연(52·현대중공업), 김호민 (53· 대우자동차)씨, 주조분야의 신현덕씨 (49) 와 전정수씨(50·이상 대우중공업), 보일러부문의 오철근 (52· 유니온), 김종하(44· 경남모직), 최장수(47·코오롱), 정봉호(44· 기아정기)씨, 편물에 김왕현씨(71·서울 흑석2동 50의11)등이 끈기와 인내로 한 분야의 1인자가 된 사람들이다.
서로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한둘이 아니다. 그중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이들이 한결같이 자신이 속해 있는 직장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한 투철한 주인의식의 소유자라는 점, 정직과 성실을 일생의 신조로 삼고 이를 실천하려 애쓴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또 성장과정에서 유복하지 않은 가정환경 탓에 대부분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비교적 열악한 환경과 근무조건, 노동의 강도와 노력에 비해 급료가 많지 않은 어려움을 공통적으로 겪어왔으면서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자세가 아름답게 돋보이는 사람들이었다 .
그러나 이들이 하나같이 선진외국과는 달리 자식들에게 장인의 솜씨를 대물림하려하지 않는다는 점은 한국사회가 이들 「빚과 소금」들을 어떻게 대접해 왔는가를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듯 했다
명장으로 선정돼 1천만원의 상금과 9박10일간의 해외연수기회를 부여받아『뒤늦게 고생만 시켜온 아내와 아이들에게 면목이 섰다』고 한결같이 말하는 이들은『젊음을 다 바쳐 국가와 사회발전에 헌신해 온 기능인들에게도 운동선수에게 주는 만큼의 격려가 뒤따랐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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