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한 판 더 지면 … '무관 이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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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창호(右) 9단이 '무관'으로 가는가. 어려서는 지지 않는 소년이었고 커서는 기록 제조기였던 이창호 9단이 타이틀 없는 무관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누가 믿으랴.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이 9단은 1대1로 팽팽한 상태에서 벌어진 KT배 왕위전 도전기 3국에서 도전자 윤준상(左) 6단에게 3집반 차로 패배함으로써 실제 무관의 위기에 직면했다. 스코어는 1대2. 이제 나머지 두 판 중 한 판만 지면 이창호는 무관이 된다. 막판치고는 실로 의미심장한 막판에 몰린 것이다.

20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41기 KT배 왕위전 도전 5번기 3국은 숨막히는 긴장 속에서 진행됐다. 초반은 흑을 쥔 이 9단이 실리에서 앞서나가며 좋은 흐름을 보였다.

그러나 중반부터 윤준상의 묵직한 반격이 시작됐다. 그는 번거로움을 피해 간명하게 승부를 결정지으려는 이 9단의 심리를 파고들어 흑진에서 한수 늘어진 패를 만들었고(한 수 늘어진 패는 계산이 안 된다) 결국 이 패를 물고 늘어져 승리를 낚았다. 전체적으로 도전자의 묵직한 승부호흡이 일품이었다.

뒷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이창호 9단이 이처럼 후반에서 밀리거나 추격당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불길한 징조로 지목되고 있다. 이 9단은 올해 반집패를 세 번 당한 반면 반집승은 한 번뿐이다.

이창호는 11세 때 프로기사가 되었고 3년 후인 1989년 첫 우승컵을 따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후 2006년까지 이창호 9단은 국내와 세계무대를 통틀어 131회나 우승했다.

해마다 평균 8회 이상 우승을 기록해온 것이다. 조훈현 9단은 생애 '158회 우승'을 기록 중인데 이는 이창호의 '14세 우승'과 함께 세계바둑사에서 영영 깨지기 힘든 양대 기록으로 꼽히곤 한다. 그러나 이창호의 우승 횟수가 130회를 넘어서자 조훈현의 158회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조 9단의 우승이 멈춘 지금 이창호가 매년 5회씩 6년만 계속하면 그 기록은 깨지는 것이다. 조 9단 본인도 "창호가 내 기록을 깰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이창호는 올해 전반기가 다 가도록 우승이 한 번도 없다. 지난해만 해도 부진했다고는 하나 4회 우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는 국수와 10단을 내주고 왕위마저 1대2로 밀려 첫 우승을 따낸 89년 이후 17년 만에 무관의 위기까지 몰리고 있는 것이다.

도전자 윤준상 6단은 국수전에서 이창호 9단을 격파했고 여세를 몰아 왕위전마저 수중에 넣으려 한다. 그의 기세는 지금 최절정이다. 하지만 이 9단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다. 그는 근래 "머리가 맑아졌다"는 얘기를 토로한 적이 있다. 머리에 뜨거운 기운이 올라와 괴로움을 겪었는데 머리가 맑아졌다는 것은 대단히 좋은 뉴스이고 도전자가 비록 강하다고는 하나 역전 우승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9단은 우승하면 왕위 12연패의 위업을 이루게 된다.

왕위 12연패와 무관. 극과 극의 기로에 선 왕위전 도전 4국은 27일 한국기원에서 열린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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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한국기원 바둑기사

1975년

[現] 바둑기사

1987년

[現] 한국기원 바둑기사

19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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