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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특성살린 「운동신학」" 다짐 |―「민중신학회」24일 창립선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한국민중신학회가 24일 창립됐다.
한국의 자생 기독교신학으로는 유일하게 「MINJUNG Theology」란 고유명사가 통용될만큼 세계신학계에 탄탄한 발판을 쌓아 올렸던 민중신학이 태동 20여년만에 학문적 조직화의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한국민중신학회의 창립선언은 절대빈곤 해소에 따른 국내민중현실의 극복과 구 소련·동구권의 붕괴가 가져온 민중이데올로기의 희석화가 민중신학자체의 존립근거를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그 대응책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어서 앞으로의 행보가 크게 주목된다.
이날 창립대회장인 서울기독교장로회 선교교육원에는 안병무·서광선·김용복·이재정·박종화·강원돈·채수일·박재순등 민중신학 제1, 2 세대군을 대표하는 신학자·현장목회자 7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창립선언문을 통해 『한국민중신학회의 창립이 그동안 흩어져있던 민중신학 역량들을 총결집하고, 민중신학도들을 육성하며, 민중적 지향을 가진 모든 이들과 협력을 일구어가는 계기가 되도록 하자』고 다짐했다.
이들은 『민중신학을 이미 시효가 지난 신학이며, 90년대의 변화된 상황이 제기하는 신학적 과제들을 감당하기에는 걸맞지 않은 낡은 신학이라고 치부하는 입장·관점이 널리 유포되고 있으나 이는 안이하고 무책임한 속단』이라며 『자주·민주·민족통일과 교회쇄신이라는 변함없는 과제를 실천해가기 위해 민중신학은 폐기가 아니라 보다 심화된 전개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중신학은 70년대초 전태일분신사건을 계기로 안병무·고서남동·현영학교수 등이 태동시킨 우리나라의 자생 기독교신학으로 70년대 이후의 유신·군부체제하에서 잇따라 일어난 이른바 「민중사건」들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면서 국내 뿐만아니라 전세계 신학계의 폭넓은 관심과 인정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들 민중신학자들은 서구식 학문방법의 틀을 거부하고, 살아있는 인간을 개념으로 재단할 수 없다는 신념에서 「민중」개념정립에는 소극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현재 민중신학계는 서남동교수의 타계를 계기로 70년대와 80년대 중반까지를 풍미했던 제 1세대가 물러가고 30, 40대를 중심으로한 소장의 제2세대가 새롭게 대두하는 교체국면을 맞고 있다. 2세대 학자들은 1세대들이 지나치게 경험주의적·감상적이었다는 비판을 앞세워 이제는 민중신학도보다 뚜렷한 이데올로기성과 과학적 방법론을 갖춘 정치·경제적 변혁운동으로 발전시켜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창립대회에서 부회장에 선임된 서광선교수(이화여대)는 『한국민중신학회의 창립은 고립·분산적으로 진행돼온 민중신학의 연구 및 실천에 구심처가 생겨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학회는 번역신학이 아닌, 내용과 방법면에서 한국적 특성을 최대한 반영하는 운동신학이 될 수 있도록 학회지 발간·학술회의·체계적 대중교육·해외신학계에의 소개활동 등을 적극적으로 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교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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