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 아마추어 경지 뛰어넘은 수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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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그냥 무심히 지나쳐버릴 것들을 시로 담아내는 일, 그것은 분명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원에 뽑힌 「수첩」은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일상생활속에서 시의 소재를 찾아내는 힘은 이미 아마추어의 경지를 뛰어넘었다 할 수 있다.
계절의 감각에 맞게 「길 가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도 수첩에 적는다」고 하는 초장의 자연스러운 서술이 좋았다. 이러한 자연스러움이 둘째 수로 옮겨와서는 이미 까마득한 과거로 떠올리는 수법 또한 범상치 않았다. 그리고 여러가지 추억의 옛 그리움들을 「올려 보는등 심지」로 마무리한 종결법도 무난하였다.
차상에 오른 「도시의 비둘기」는 얼른 보기에는 참신한 듯하나 상의 처리에서 아직 미숙한 점이 많은 작품이었다. 이런 지적은 차하의 「사랑」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아무리 좋은 소재라하더라도 시로써 빚어내는 데에는 그만한 시적인 마음의 눈이 새로워야 한다는 점을 재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풀밭의 누드」는 제목만큼이나 신선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한편의 시조로서는 군데군데 흠을 발견할 수 있어서 입선으로 밀려났다. 이밖에 「허수아비」「장미와 돌탑」은 반짝이는 한두구절을 살리지 못한 감이 있었고 「가을 풍경」은 흔한 얘기를 시조로 되살리는데 부족하였다. 아울러 「무당벌레의 죽음」은 언어를 다듬는 정성이 좀더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시심의 등을 켜야 할 계절에 기대만큼 뛰어난 작품이 없었던 아쉬움이 남는다. 좋은 작품을 많이 읽고 새겨보는 노력이 없이는 좋은 작품을 쓸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더욱 분발하라는 당부를 드린다. <심사-이우걸·지성찬><그림 이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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