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32. 잭 니클러스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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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잭 니클러스가 올 4월 한국을 방문해 자신의 이름을 딴 국내 골프장 명명식에 서 기념 샷을 날리고 있다. [중앙포토]

퍼스오픈이 끝나고 멜버른으로 향했다. 퍼스는 호주 남서쪽 끝에 있는 도시다. 멜버른은 퍼스에서 볼 때 동남쪽 끝에 있는 도시여서 비행기를 타고도 서너시간이나 날아갔던 기억이 난다. 비행기 창밖을 통해 내려다 보니 호주대륙은 전체가 목장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목장대륙을 본 나는 "미국 말고도 이렇게 큰 나라가 또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호주PGA선수권이 열린 코스는 유명한 로열 멜버른이다. 3개 코스로 구성된 로열 멜버른은 세계 100대 골프장 상위권에 항상 오르고, 호주에서는 단연 1위로 평가받는 명문 중의 명문 골프장이다. 그곳은 페어웨이 잔디가 마치 카펫이 깔린 것처럼 촘촘했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완벽한 잔디였다.

나는 멜버른에서도 퍼스에서의 상승세를 이어갔다. 1라운드에서 3언더파 69타를 치고나서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방문 밑으로 종이가 한 장 쑥 들어왔다. 2라운드 조편성이 바뀐다는 안내쪽지였다. 보통 골프대회는 1,2라운드는 조편성이 한 번 되면 바뀌지 않고 같은 선수들끼리 치게 된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주최 측에서 2라운드 조편성을 바꾼 것이었다.

새 명단을 보니 '잭 니클러스'라는 이름이 있었다. 나는 크게 흥분이 됐다. 당시 메이저대회를 휩쓸며 세계를 주름잡고 있던 '황금곰' 니클러스와 실력을 겨루게 되다니. 다른 한 명의 선수는 '존'이라고만 기억하고 있는 영국의 젊은 선수였다.

드디어 2라운드. 티잉그라운드에서 니클러스를 만나 악수를 나눴다. 그의 키는 1m80cm정도 쯤 돼 보였고, 몸집도 거대했다.

하지만 손을 잡아보니 '한번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상대선수와 악수를 하면 그가 어느 정도 힘을 쓸 수 있을 것인지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손이 크고 쥐는 힘이 센 사람이 장타를 날린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1위를 물고 뜯어서 꼭 이겨야겠다"는 투지가 솟았다.

1번 홀은 오른쪽으로 약간 굽은 도그레그홀이었다. 니클러스는 드라이버 대신 1번 아이언을 빼 들었다.

니클러스는 '왜글'을 오래 하고 공을 치는 습관이 었었다. 어드레스부터 공을 칠 때까지 한 열다섯 번 쯤 몸을 움직이며 시간을 끌었다. 언젠가 스페인의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샷을 하기 전에 왜글을 오래한다고 해서 미국언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만일 니클러스가 외국선수였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니클러스는 예외였다.

사전 동작이 3박4일쯤 걸린 것 같았던 니클러스가 드디어 샷을 했다. 공은 빨랫줄처럼 뻗어 나갔다. 나는 드라이버를 잡고 샷을 날렸다. 또 한 명의 동반자 존은 첫 번째 샷부터 OB를 냈다. 그는 니클러스의 기세에 눌려 제풀에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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