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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의 노스텔지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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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25면

부다페스트는 그 유서 깊은 도시 한복판을 도도하게 가로지르는 안개 낀 다뉴브 강과, 특별히 일요일에 그 강에 몸을 던졌다는 수백 명의 자살자들과, 그들이 죽기 전에 들었다는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로 한때 악명을 날렸지만, 그 전설의 반은 죄다 허풍이거나 공공의 스턴트라는 걸 부다페스트에 와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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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토요일 밤, 친구를 따라 우연히 가게 되었던 레스토랑(Kispipa Vendeglo, V11. Akafa utca 38)에서 늙은 피아니스트가 들려주는 ‘글루미 선데이’를 들을 때 나는 감동받았고, 왠지 울고 싶은 기분까지 들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거기 앉아 있었던 것 같은 머리가 벗어진 그 늙은 피아니스트는 ‘글루미 선데이’를 작곡한 세레스(Seress)가 그러했듯이 한평생 평범한 라운지 피아니스트로 살았으리라. 하지만 적어도 그는 그 순간만큼은 행복해 보였다. 자신의 연주에 열심히 귀 기울이고 있는 손님이 우리 일행을 포함하여 적어도 5명은 넘었고, 그는 그 사람들에게 이따금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유럽 국가들이 그렇듯 헝가리도 전체적으로 그다지 쾌활한 곳은 아니다. ‘글루미 선데이’에 대한 전설 따위는 모두 잊는다 해도 부다페스트에는 확실히 뭔가 애수 어린 특별한 것이 있다. 우리는 그걸 노스탤지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귀향을 꿈꾸는 자들의 고통스러운 비애, 노스탤지어.

무엇보다 부다페스트는 로마와 터키 침략으로 만들어진 그 오래된 역사 안에 몸을 적실 수 있는 천연 온천수의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아르누보 욕탕 안에서 우아하게 몸을 적시고 심지어 유유자적 체스를 두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그 속에서조차 과거의 아름답고 멋졌던 황금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의 어떤 애수 어린 몸부림을 읽는다.

심지어 이곳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조차 있다. 스탈린 시대를 암시하는 인테리어나 사진으로 가득 차 있는 댄스 클럽 ‘차차차(Cha Cha Cha)’ 같은 곳. 그리고 60년대 사회주의 시대의 음료였던 ‘밤비(Bambi)’ 찾아오기 같은 한때의 유행들. 노스탤지어는 기억하는 것보다는 잊어버린 어떤 것에 대한 동경에 좀 더 가깝다. 때때로 과거의 어떤 불쾌감마저 지운다. 그 때문에 부다페스트 태생의 마르크시즘 미학자 루카치는 아마도 이런 멋진 서문을 남길 수 있었으리라.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그 별빛이 그 길을 환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무엇보다 부다페스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노스탤지어의 그 정점은 헝가리 집시들이 식당이나 길거리에서 들려주는 바이올린 선율 위에 있다.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곳이 없는 수많은 집시에게 연주는 삶 그 자체다. 이 도시에서는 누구라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그들만의 비애로운 노스탤지어를 안주 삼아 ‘군델(Gundel)’ 같은 호화로운 레스토랑에서 멋진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곳이 바로 부다페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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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허니’ 김경씨는 패션 칼럼니스트이자 인터뷰어로 개성 넘치는 책 『뷰티풀 몬스터』『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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