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청객 울린 보은양 공판(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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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9살때부터 12년간이나 자신을 성폭행 해온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여대생 김보은양(21)과 남차친구 김진관군(22)의 항소심 결심공판이 열린 24일 오후 형사지법 대법정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대학생과 여성단체 관련자 등 5백여명이 방청석을 가득메웠다.
변호인은 이번 재판을 『이 나라의 모든 성폭력 피해자와 함께 하는 사건』으로 규정,김양이 겪어온 처참한 경험과 김군의 애절한 사랑을 강조하며 이들에 대해 관대한 처분을 내려줄 것을 촉구했다.
『성폭력에 대해서는 준엄하지만 성폭행 피해자에게는 희망을 주는 선고를 내려주십시오.』
그러나 검찰은 이에 앞선 구형공판에서 『피고인의 범행동기 등 안타까운 부분이 많으나 그렇다고 존엄한 인간의 생명을 박탈한 피고인의 행위가 정당화 되지는 않는다』며 원심대로 징역 12년씩을 구형했다.
이어 두 피고인의 최후진술.
『보은이의 얼굴에… 해맑은 웃음을… 되찾아주고 싶었습니다.』 목이 멘 김군은 울먹이며 간신히 진술을 이어 나갔다.
김양이 김군을 사귀기 전에 만난 다른 두남자는 「저주스런 비밀」을 듣고는 아무말없이 떠난 것으로 알려졌으나 김군은 달랐다. 떠나는 대신 애인을 짓밟은자를 응징했다.
『어머니 다음으로 사랑하는 보은이가 다른 남자에게 무참하게 짓밟히는 것을 알고도… 내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낄때마다… 죽고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방청석 여기저기서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구속된후 감옥에서 보낸 7개월이… 지금까지 살아온 20년보다 훨씬 편안했습니다.… 더이상 밤새도록 짐승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됐기 때문입니다.』 김양 역시 감정이 북받쳐 울음을 참지못했다.
우리사회에서 입에 담기조차 꺼리는 근친강간,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과감히 공론화해 적절한 대책을 마련할 때가 왔다는 느낌이었다.<남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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