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마르크시즘」 설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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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8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진보학계와 운동진영에서 변혁이론의 중심적 틀로 자리를 굳혀왔던 마르크시즘이사회주의 국가들의 잇따른 붕괴 여파로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최근 유럽에서 직수입된 포스트 마르크시즘이 진보학계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진보 학계를 포괄하는 학술단체협의회(상임 공동대표 안병욱 성심여대교수)가 지난달 31일 숭실대 사회봉사관에서 개최한 토론마당의주제가 「한국에서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포스트 마르크스 주의를 중심으로」였던 것은 이같은 학계내의 논란을 반영하는 것이다.
토론마당에서 국내 포스트마르크시즘의 대표자인 이병천교수(강원대 경제학과)는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마르크스 주의의 핵심에 해당하는 역사적 유물론과 단절한다는 의미에서 이미 마르크스 주의가 아니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론으로서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보존·전환시킨다는 점에서는 마르크스의 전통속에 있다』고 소개했다. 포스트 마르크스 주의는 철학, 정치와 국후이론·경제이론·여성해방이론·생태이론등 비마르크스적인 많은 진보이론의 유산을 흡수하는 다원적 급진민주주의라는 설명이다.
유팔무 교수는 이교수에대해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 이론, 실천적 운동,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문제를 구별하지 못했고 마르크스 주의의 상당부분을 오해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마르크스의 이론은 완성되지 않은 부분이 상당히있고 어떤 부분은 오늘날 설득력을 잃었지만 이런 부분들을 가려내고 보완·발전시키는 것이 후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자본주의 모순을 인정하면서 계급의 객관적 이해관심의 존재를 부인하는 짓은 모순』이라고 지적하고 다원적 운동주체론에 대해서도멘주적 연대 가능성과 현실성이 적으며 실제 연대하면 운동이 무정부성이 생길뿐 아니라 개량주의적 방향으로 연대되거나 심지어 흡수통합의 위험까지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의 논의는 이병천교수가 당초 영향력있는 마르크시즘학자였다가 근래에 포스트 마르크시즘으로 개종했고, 두 교수가 현재 양 계열의 대표적 이론가라는 점에서 앞으로 진보학계의 더많은 토론과 논란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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