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불법 자금 거래와 돈세탁 방지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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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해 불법 자금 거래와 돈세탁 방지를 위해 대대적인 금융체제 정비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2006년 1월25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1529호로 상업은행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북한내 예금ㆍ대부ㆍ결제 등을 전문 취급하는 은행에 관한 법으로 지금까지 북한에는 없던 법이다.

또 10월25일 최고인민위 상임위 정령 제2039호(사진)로 자금세척 방지법을 제정했고 11월2일에는 내각 결정 제45호(사진)로 ‘대외 결제은행 돈자리 규정을 채택함에 대하여’ 를 공표했다.

2005년 9월 북한의 방코델타 아시아(BDA) 자금이 동결된 이후부터 1년 사이에 제정된 이 법과 규정은 북한 당국이 ‘투명한 금융 거래’에 대한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상업은행법과 자금 세척 방지법은 북한법연구회(회장 장명봉 국민대 명예교수)가 제공했으며, ‘대외결제은행 돈자리 규정을 채택함에 대하여’는 본지가 단독 입수했다. 이하 내용을 살펴본다.

상업은행법=모두 6장 57조로 구성된 이 법은 대내적으로 투명한 금융 시스템을 확보하겠다는 정책의지를 천명했다. 장 교수는 “국제 금융사회에 진출하려면 우선 대내적으로 정상적인 체제를 갖춰야한다”며 “상업은행법은 그 일환”이라고 말했다.

1장 3조는 ‘국가는 상업은행 업무에서 신용을 지키며 그것을 현대화 과학화 하도록 한다’고 규정했다. 5조는 ‘상업은행 일군은 해당한 자격만을 가진 자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또 8조는 ‘국제사회 교류 협조를 강화한다’고 했다. 업무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3장의 18조~41조는 상업은행의 업무와 관련된 세부 규정을 담고 있다. 특히 18조는 상업 은행의 12개 업무를 제시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7항은 ‘거래자에 대한 신용확인 및 보증 업무’를 규정해 불법 돈 거래를 원천 봉쇄하도록 했다.

또 30조는 ‘거래자는 한 은행에 하나의 돈자리를 개설해야한다’고 했다. 여러 돈자리(계좌)를 차명으로 만들지 못하게 한 것이다. 또 개인 돈자리에 기관,기업소, 단체의 자금을 예금할 수 없게 했다. 장 교수는 “북한에서 돈세탁은 국내은행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막은 것”이라고 말했다.

6장은 벌칙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53조(벌금 조항)과 54조(업무중지)는 각각 7항, 4항에 걸쳐 자세하게 제제에 관해 구체적이며 명시적으로 규정했다. 이는 북한 당국의 정책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장 교수는 말했다.

‘돈자리 규정을 채택함에 대하여’=은행에 돈자리(구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느냐에 대한 내각 규정이다. 모두 5장58조로 구성됐다.

3조는 대외 결제은행의 돈자리와 관련한 사업의 통일적인 장악과 지도를 무역은행이 담당하도록 했다. 고대 북한학과 남성욱 교수는 “그동안 권력기관이 대외 거래에 개입하다 보니 BDA 같은 문제가 생겼다”며 “앞으로는 무역은행이 대외 돈거래를 책임지고 통제하도록 1원화했다”고 설명했다.

6조는 ‘합법적인 외화의 수출입이 일어나는 거래기관은 대외 결제은행에 돈자리를 개설해야하며,하나의 거래은행에만 돈자리를 개설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다. 구좌 없는 비공식 대외 거래는 안되며, 그것도 한 곳에 집중시켜 관리와 통제의 효율성을 기했다.

9조는 ‘돈자리 개설을 위해 신청 문건을 내야한다’고 규정했다. 투명성을 강화한 것이다. 남 교수는 “BDA 거래를 밝히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거래 증거가 없어 애를 먹은 데 대한 반성 등이 반영돼 ‘문서화’를 의무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남 교수는 “예를 들어 미국이 특정 거래에 의문을 표시하면 ‘어떤 기업이 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신청 문건이 합법성을 주장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8조는 ‘거래 기관은 거래은행의 돈자리를 통하여서만 자금을 조성하고 리용하여야한다.’고 규정하고 19조는 ‘비법 거래를 하거나 돈자리를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모두 구좌를 통해 합법적 범위내에서만 돈을 만들어야 하며 비자금을 만들면 안된다고 규정한 것이다.

세척 방지법=2006년 10월 25일 제정됐다. 불법 자금과 재산을 합법적으로 마련한 것처럼 ‘세척’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관련 자금을 몰수 하거나 동결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특히 5조는 자금 세척에 이용될 수 있는 자금,자산으로 9개 범위를 지정했다.

위ㆍ변조한 화폐나 증권, 마약,무기의 밀수 밀래로 얻은 자금ㆍ재산,비법적인 화폐,상품 매매로 얻은 자금ㆍ재산 등이다. 모두 북한의 주특기로 의심받고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 규정은 국제사회에 북한의 입장을 천명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 9조는 돈자리를 개설하지 않은 자와 거래할 때 신분 확인을 의무적으로 할 것을 규정했고,13조는 자금세척 행위를 발견한 금융 기관은 즉시 당국에 보고할 것을 의무화 했다. 특히 25조는 자금 세척 방지사업에 대한 국제적 협조를 규정, 북한이 국제 금융 시스템과 교류하고자 하는 희망을 담고 있다.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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