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근의대선표심읽기] '다자구도의 마력' 대선판 흔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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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정치권의 키워드는 '분열'이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범여권 통합은 멀고도 험한 우회로로 접어들었다.친노(親盧)와 반노(反盧)가 격돌하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추가 탈당은 초읽기에 들어섰다. 한나라당은 4.25 재.보선 참패의 내상이 분당 위기로 치닫고 있다.

8~9일 중앙일보가 실시한 한나라당 대의원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명박.박근혜 '빅2'가 경선 전에 '갈라질 것'으로 보는 비율이 35.9%에 달한다. 3월 초 조사 결과 25.3%보다 10.6%포인트 높아졌다.

정치권 일각에선 벌써 다자(多者)구도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분열의 효과가 다자구도를 낳을 것이란 얘기다. 연말 대선에서 한나라당과 비(非)한나라당 두 진영 모두 더 쪼개져 선거를 치르게 된다는 전망이다. 다자구도란 3위 이하 후보의 지지율이 승패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클 때 성립한다. 즉 3위 이하의 득표율이 1, 2위 간 순위 변화를 가능케 하는 구도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클린턴 후보가 공화당 부시(아버지)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배경에는 3위 후보 페로의 '역할'이 컸다. 텍사스의 억만장자 로스 페로는 19%를 득표했지만 보수적인 공화당 표를 주로 잠식해 민주당 클린턴이 승리하는 데 도움을 줬다.

다자구도 상황에선 선거 양상이 매우 유동적이라 예측이 쉽지 않다. 앞서 가던 후보가 역전패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이 두 차례 대선에서 역전패한 것도 다자구도와 관련이 있다. 97년 대선 역전패 때에는 19.2%의 득표를 얻은 3위 이인제 후보가 있었다. 2002년 대선도 그 시작은 정몽준 후보까지 포함된 다자구도였다. 2, 3위 후보가 막판 단일화로 인위적인 양자대결 구도를 만들어 1위 후보를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양자대결 구도에서 승자가 되려면 50%에 가까운 득표를 해야 한다. 다자구도에선 30%대의 득표율로 당선이 가능하다. 87년 1노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4자 구도에서 노 후보는 36.6%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양자대결이었던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 득표율 48.9%와 비교하면 큰 차이다.

그래서 다자구도에선 상대적으로 작은 지지기반을 가진, 그러나 지지자의 충성도가 높은 후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욕심을 내게 된다. 자신의 지지 기반에 조금만 더 얹으면 당선권에 진입한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빅2 진영 일각에서 '4자 구도'론이 나오는 것은 이런 점에서 흥미롭다.

최근 한 방송사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반 국민 가운데도 한나라당 분열을 전망하는 의견이 과반수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다자대결 기운이 짙어지는 가운데 올해 대선은 오리무중(五里霧中)으로 빠져들고 있다.

안부근 여론조사전문기관 디오피니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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