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청사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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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30대 서기관 「공무원 열정·근면」 그린 책 불티/“그날 퇴근·그날 출근 일꾼들 많아/애가질 시간없다 부인이 하소연”/동료들 “바로 내이야기” 사흘만에 매진
최근 공직자의 해이해진 기강과 만연한 부패상을 지탄하는 사회분위기에 저항이라도 하듯 공무원의 열정과 근면을 부각시키는 한 중앙부처 공무원의 책이 과천관청가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화제의 책은 「젊은 경제관료들의 열정과 고뇌」라는 부제가 붙은 『과천종합청사의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는 제목의 2백쪽짜리 소책자.
저자는 행정고시 출신의 경제기획원 서기관으로 현재 한국개발연구원(KDI)에 파견 근무중인 공무원 생활 15년의 이철환씨(37).
『지금도 오늘 퇴근해서 오늘 다시 출근하는 직원들이 있다.』 『한 사무관 부인은 남편이 허구헌날 일에 파묻혀 야근과 외박을 일삼아 시부모께서 한시바삐 손자를 보고 싶어하시는데도 도대체 애를 가질 시간이 없다며 상사에게 찾아와 하소연하기도 했다.』
이씨가 일때문에 밤을 꼬박 새우거나 밤늦게까지 일을 한뒤 자정이 훨씬 넘어서 퇴근했다가 제시간 안에 출근하는 동료직원을 묘사한 부분이다. 오후 6시 땡하면 퇴근하는 직원도 물론 있지만 아직도 대다수는 열심히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최근 일부 사무관들 사이에 자신들을 위해서 시키는 일이나 하는 노예근성의 속물로 평가절하하거나 단순한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혹시 이런 잘못된 생각에 빠져있을 지도 모르는 동료나 후배들에게 참고가 될까해서 이 책을 썼습니다.』
이씨는 14년동안의 사무관 생활을 돌이켜보고 일반인들이 흔히 갖기 쉬운 공무원에 대한 그릇된 시각을 바로잡자는 생각에서 지난해 9월부터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 25일 책이 나오자마자 주위 동료들이 『바로 내 이야기다. 우선 집안식구부터 보여주어야겠다』며 공감했다. 초판이 3일만에 동났고 29일부터 재판에 들어갔다.
이씨가 사무관 업무에 대해 느끼는 열정과 자부심은 대단하다. 국민생활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의 절반이상이 실제로 사무관 손에서 요리되고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사무관이야말로 곤료조직의 핵이며 사무관이 건강해야 공직사회 전체가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씨는 성균관대 4년때 행시에 합격한 이후 산림청·관세청을 거쳐 경제기획원으로 옮겨 10년동안 사무관을 지내다가 작년에 서기관으로 진급했다. 「기획원의 꽃」이라는 기획국의 총괄사무관도 1년2개월 지낸 그는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돼 오는 15일 미국 오리건주립대에서 2년간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떠날 예정이다.<정철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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