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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시대 경영과 예술이제는 하나

중앙일보

입력

뉴스위크

“어머님 집 마당에서 요놈을 2시간 동안 쫓아다녔습니다.” 대롱 같은 기다란 더듬이를 꽃 수술 속에 꽂은 나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김중길 아주약품공업 사장은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작품을 이야기했다. 순간 포착이 예사롭지 않은 솜씨다.

지난주 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청담동의 한 갤러리에서는 ‘인연’이라는 이름의 사진 전시회가 열렸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출품한 작품이었다. 김중길 사장, 김영진 한독약품 회장, 김재우 아주산업 부회장, 서정돈 성균관대 총장,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장, 정춘보 신영 회장, 김중민 MPC 회장, 김수근 삼성인력개발원 부원장, 박윤수 수이스타 대표, 조근호 사법연수원 부원장 등 41명의 저명인사가 직접 찍은 사진을 내놓았다. 인물, 풍경, 누드 등 피사체는 다양했다.

연령과 사업 부문이 모두 다른 이들이 사진이라는 예술을 통해 한자리에 모인 까닭이 무엇일까? 이 ‘인연’의 한가운데에 바로 ‘감성과 창조의 경영’이라는 화두가 숨어있다. “필요의 시대에서 욕구와 욕망의 시대로 변화했습니다.

고객의 욕망을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 욕망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바로 오감입니다. 오감의 집적이 무엇인가요? 바로 예술입니다.” 요즘 경영자들에게 주어진 감성경영이라는 숙제를 이보다 더 잘 풀어낼 수 있을까? 턱시도를 멋지게 차려입은 표현명 KT 휴대인터넷사업본부장의 명쾌한 설명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문화와 예술을 통해 기업에 감성경영이라는 새로운 색채를 입히자는 뜻에서 CEO 문예포럼 ‘필앤채(Feel & 彩)’를 마련했다. 와인, 미술, 사진, 음악을 함께 즐기는데 사진반은 그 열정이 남다르다.

회원들의 선생님으로 나선 사진작가 조세현씨는 “처음에 강의 제의를 받고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이런 모임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이어질까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의를 시작하고 나서는 깜짝 놀랐다. “열정과 집중력이 대단했다. 강의는 네 차례뿐이었지만 여기 전시된 작품들을 보라. 보통 정성이 아니다. 사실 몇몇 작품은 국전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출장이 잦은 CEO들은 비행기 탈 때도 카메라를 정성껏 챙겼다. 전시 작품 중 해외에서 찍은 사진이 많은 까닭이다. 그리고 집단실습에 나설 때마다 서로 좋은 구도를 잡으려고 선의의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전시 작품들은 경매를 거쳐 수익금 전부를 대한사회복지회 암사재활원 중증 장애 어린이 돕는 데 쓰기로 했다.

“예전에는 예술과 문화가 산업화되는 시기였다면 이제는 산업 그 자체가 예술이 되고 문화가 되는 시대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상상력을 얻으려 몸부림치는 CEO들이 예술과 문화에 집중하는 이유”라고 ‘필앤채’ 학교를 이끄는 삼성경제연구소 강신장 상무는 말했다.

이제 창조는 예술가만의 몫이 아니다. 빨리 많이 만들어 경쟁력을 확보하던 시대는 가고 오감을 동원한 새로운 창조적 상상력이 경쟁력의 근원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다.

이 정 명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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