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사람 눈 밝힌 「뇌종양 소년」(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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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뇌종양으로 18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 한 소년이 암흑의 고통을 겪던 두사람을 빛의 세계로 인도해냈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다 하느님의 부름을 받는 날 나의 신체를 투병하는 이웃을 위해 바치고 싶습니다.』
이같은 유서와 함께 이명준군(18·서울 번3동·사진)은 자신의 안구를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본부장 박진탁 목사·56)에 기증하고 25일 오후 6시30분 조용히 숨을 거뒀다.
이군의 안구는 서울대병원 이진학 박사(48)의 집도로 이튿날 각막혼탁·원추각막 증세로 각각 두눈의 시력을 잃고 있던 심모씨(44)와 한 10대 여학생에게 성공적으로 이식됐다.
쾌활한 성격에 학교성적도 우수해 급우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이군이 처음 뇌종양 진단을 받은 것은 남대문중 3학년때인 89년초.
허리통증을 호소하는 이군과 함께 어머니 김순섭씨(51)가 병원을 찾았지만 이미 척추에까지 암세포가 번져 손 쓸수 없는 상태라는 날벼락 같은 선고를 받았다.
몇군데 병원을 더 다녀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군은 고교진학도 포기한채 오로지 삶을 조금더 연장하기 위한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군은 통원치료를 받으며 자신처럼 죽음을 기다리는 병이 아니면서도 신체의 일부가 나빠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환자들을 목격했다.
이군을 극진히 간호하던 어머니 김씨마저 뒤늦게 발견된 뇌종양으로 이군보다 하루 앞선 24일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의 예견치 못했던 죽음을 마주한 이군은 자신의 몸중 건강한일부라도 병마와 싸우는 이웃에 나눠주고자 장기기증운동본부의 「빛의 전화」를 돌렸다.
『이군은 이제 어머니 곁으로 갔지만 이군의 눈은 그가 사랑을 베푼 다른 이웃을 통해 세상을 볼 것입니다.』
74년 실명한 자신의 눈대신 이군의 눈을 통해 광명을 되찾게 된 심씨는 이군에게 감사하면서도 그의 죽음을 못내 안타까워했다.<이훈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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