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딸들의 반란' 어떻게 풀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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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대법원은 사회적 가치판단과 직결된 주요 사건에 대해 공개 변론 재판을 도입해 해당 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인 진술형식으로 듣고 판결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첫 번째 공개변론이 오는 18일 열린다.

제1회 공개변론 사건은 출가외인 딸들이 종중을 상대로 자신들도 공동선조의 후손으로 종중원의 자격이 있음을 확인해 달라는 사건으로 대법원은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의 여자, 특히 출가녀에 대해 종원의 지위를 부여할 것인가, 현금화된 종중 재산의 분배에 있어 출가녀를 어떻게 취급해야 할 것인가, 더 나아가 성년의 여자가 종중의 구성원으로서 종중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인정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국민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해 공개변론을 연다고 한다.

*** 관습은 시대에 따라 바뀌는법

사건은 종중이 종중 재산을 처분한 현금을 분배하면서, 성년남자, 미성년자 남자, 출가하지 않은 성년의 여자, 미성년의 여자, 출가한 여자 등에게 각각 금액을 차등해 지급하자, 출가한 딸들이 자신들에게 종중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문제제기를 하면서 시작됐다. 1심과 2심 법원은 기존의 대법원 판례의 입장에 따라 출가녀에게는 종중원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판례는 종중은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제사 및 종원 상호 간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하는 자연발생적인 종족집단체로서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의 남자로만 구성되는 것이 전통의 관습이라는 판단을 전제로 해서, 이러한 관습에 따르면 종중원은 성년의 남자로만 구성되고 미성년자와 여자.출계자는 제외되며, 성년의 남자 이외의 자를 종원으로 한다는 내용의 규약이 있다 하더라도 이는 종중의 본질에 반하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관습은 시대나 지역 등에 따라 변화하고 내용을 달리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조상에 대한 제사를 아들과 출가한 딸이 돌아가며 지낸 시대도 있었고, 출가한 딸뿐 아니라 다른 성을 지닌 며느리에게도 종중원 자격을 인정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성년의 남자만이 분묘수호와 제사라는 역할을 담당했고, 그 결과 성년의 남자만이 종중원이 될 수 있었던 시대나 지역의 관습만이 오늘날까지 종중이나 종중원의 자격에 대한 법적 판단의 근거가 돼야 하는지 의문이다. 더 나아가 종중 구성원들이 성년의 남자 이외의 자에게 종중 자격을 인정하겠다고 하는 경우에도 효력이 없다고까지 해야 하는 점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

성년의 남자가 아니어도 공동선조의 후손인 이상 상호 간에 친목을 도모할 수 있다. 분묘수호와 제사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날 공동선조의 후손인 성년 남자 중 실질적으로 분묘수호와 제사라는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전체 종원 중 몇%나 되는가.

종중이 존재하는 목적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논리라면 성년남자 여부가 아니라 실제 분묘수호와 제사라는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하는가를 기준으로 해야만 한다. 분묘수호와 제사라는 종중의 목적은, 공개변론을 결정하면서 대법원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사회변화에 따라 이미 퇴색했다.

*** 법정상속 출가해도 차별없어

같은 호적에 있는 여자의 법정상속분은 남자의 2분의 1, 출가한 여자의 법정상속분은 남자의 4분의 1로 규정했던 민법이 개정돼 법정상속분에서 성별과 출가 여부에 따른 차별이 없어진 지 이미 오래다.

가족 내에서 자녀들은 '아들.딸 구분없이' 모두 같은 정도의 책임과 역할을 부담해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화됐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과거 어느 한 시점에 존재했다가 사라진 관습을 붙들고 현재의 우리 모습을 그 틀에 억지로 맞추려 한다.

공개변론이라는 절차를 통해 종중원의 자격에 대한 법적 판단에 종중의 목적과 역할에서의 변화를 반영하려는 대법원의 시도가 반갑다. 이러한 시도가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내는 결실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이를 통해 차별을 해소하려는 오랜 노력 끝에 마련된 법규정들이 제대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조수정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