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마오쩌둥과 노무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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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라고 한다. 그러나 독학으로 변호사가 된 뒤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을 빼면 둘 사이에 공통점이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과 盧대통령 사이에 비슷한 데가 많은 것 같다.

우선 둘은 뛰어난 전술가이며 탁월한 전략가라는 점에서 닮았다. 대중을 휘어잡는 선동.선전술에 능하며, 일거에 국면을 바꾸는 승부사적 기질도 통한다. 최근 盧대통령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 시발점이 됐던 재신임 승부수는 74세의 나이로 양쯔(揚子)강을 헤엄쳐 건넌 毛의 승부수를 연상케 한다.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 공격하면서 우군을 결집시키는 것도 비슷하다. 위기 때마다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와 위기를 극복한 것도 유사하다.

예를 더 들어보자. 후보 시절 盧대통령은 대장정 시절의 毛였다. 이회창 후보는 물론 정몽준 후보에게까지 뒤져 도무지 가망이 없던 그의 처지는 장제스(蔣介石)에게 밀려 서북 오지로 쫓기던 毛의 신세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후보 단일화와 선거 전날 정몽준씨의 전격 지지 철회는 결과적으로 盧대통령 당선에 일등공신이 됐다. 위기를 느낀 지지층이 인터넷 사발통문을 돌리며 똘똘 뭉친 것이다. 장쉐량(張學良)이 장제스를 감금한 시안(西安)사건으로 毛가 구사일생했다면, 盧대통령의 당선에는 역설적으로 정몽준씨가 결정적 기여를 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정몽준씨 스스로 이 정권에 지분이 없음을 천명해 주었으니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지난 2월 盧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지금까지의 혼란상은 문화혁명 때와 비슷한 점이 많다. 毛는 '천하대란'을 통해 천하대치(大治)를 이룬다며 홍위병을 동원해 난리판을 벌였다. 盧대통령이 원했건, 원치 않았건 우리도 바야흐로 천하대란의 시대에 접어든 느낌이다. 좌우.보혁.동서로 갈가리 찢어져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정치권은 악쓰고 욕하고 머리채 잡아당긴 것 말고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다. 최근엔 들리느니 누가 얼마 먹었네 하는 추악한 소리뿐이다. 오래 전에 유행하던 '민나 도로보(모두가 도둑)'의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든 국민은 이제 화낼 힘조차 없다. 바싹 메마른 세밑에 국민은 우울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누구나 느끼는 게 있다. 세월 정말 빠르다는 것과 올해도 어김없이 다사다난했다는 것이다. 하릴 없이 또 한살 먹는구나 하는 자괴감도 든다. 대통령이라고 다를 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긋지긋한 천하대란을 끝내고 대치, 즉 큰 정치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주로 대통령 몫이다. 중국이 10년 간의 문화혁명으로 30년 후퇴했다지만 우리는 작금의 혼란을 잘만 극복하면 신명나게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우리가 누구인가. 경제면 경제, 민주화면 민주화 모두 다 축약해 발전시켜온 민족 아닌가.

그러기 위해선 이번 불법 선거지금 수사를 누구나 납득하도록 명쾌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그 다음 민생을 챙기는 정치에 하루 빨리 복귀해야 한다. 이번 수사를 내년 총선으로 연결시키려는 꼼수성 '소치(小治)'로는 이 대란을 타개할 수 없다. 마침 기회도 좋다. 행운은 이번에도 대통령 편인 것 같다.

실패한 전직 대통령들과는 달리 그는 집권 초반에 측근들을 대거 정리할 수 있는 호기를 잡았다. '좌××'니, '우○○'하는 측근들이 다 제 발로 걸어 나가고 있지 않은가. 내년에는 경제도 다소 좋아진다고 한다. 시쳇말로 이젠 잘해서 칭찬받을 일만 남았다. 대통령의 행운이 국민의 행운으로 연결되길 기대해 본다.

유재식 문화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