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암살 배후 더 밝혀내야 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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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범 안두희씨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것도 집념어린 한 민간인의 추적과 설득 끝에 얻어낸 역사적 증언이었다. 안두희씨의 증언에 따른다면 그의 암살 배후에는 당시 방첩대장 김창룡의 지시와 미 정보국 요원의 강한 암시도 있었던 모양이다.
현대사 연구가들에겐 이미 심증적으로나,당시 정황으로 봐서 개연성이 높다고 짐작될 안씨의 증언은 범행 당사자의 입을 통해 나왔다는 점에서 현대사 연구의 새로운 출발을 예고한다.
뿐만 아니라 8년간 단독범임을 주장해온 안씨를 추적해서 때로는 강압적으로,때로는 회유와 설득으로 암살의 배후를 자백받은 권중희씨의 집념은 굴절된 한국 현대사의 한 장을 바로 잡는 빛난 성과로 평가될 것이다.
광복에서 미 군정 남북분단에 이르는 우리의 현대사는 그렇게 먼 역사가 아니면서도 아직도 수없이 많은 비밀과 베일에 가려져 있다. 백범을 비롯한 많은 정치가의 암살에서부터 38선이 그어지기까지의 크고 작은 역사가 매몰된채 파헤쳐지지 않고 있다.
최근 젊은 역사학자들에 의해 상당부분 연구성과가 나오고 있는 터에 안씨의 증언은 당시 정치상황을 밝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이 분야의 연구가 더욱 활기 띠기를 기대한다.
특히 현대사 연구에서 당사자의 증언과 기록은 1차적 사료로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중앙일보에 연재중인 「비록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매몰된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관련자의 증언과 자료로 다시 쓰는 현대사 재현 노력의 일환이다. 소련과 중국,그리고 일본에 흩어져 살고있는 당시의 증언자들을 찾아 채록하고 한장의 귀중한 사진을 찾아 담당자들은 한달의 신고를 겪기도 했다.
이번 안씨의 자백을 받아낸 권중희씨의 값진 노력 또한 단순한 감정 차원을 넘어선 현대사의 기록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란 언제나 바로 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때만 바르게 살아남는다. 거짓과 허위,「풀과 가위」로 날조되고 위조되는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의식과 노력이 역사가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있어야만 과거의 역사와 오늘의 현실이 제대로 파악되고 바르게 기록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언제나 새롭게 쓰여지는 법이다.
백범 살해범의 입을 열게한 권중희씨의 불굴의 집념은 과거 역사를 올바르게 세우려는 준엄한 역사가의 노력인 동시에 오늘 우리의 현실을 바로 보고 바로 쓰게 하는 모든 지식인에 대한 경각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안씨가 입을 연 것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해 아직도 남아있는 백범 암살배후에 얽힌 여러 의문점을 철저히 밝히는 노력이 더 한층 경주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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