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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규제되어야 할 총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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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은 무엇보다 동포 학생이 범인이라는 사실에 충격이 크다. 범인이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라는 자조 섞인 소리가 나올 정도로 충격의 강도는 메가톤급이다.

일부에서는 다인종 이민사회라는 미국적 특성을 확대경 삼아 이 사건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범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에 이민 왔다니까 적응에 문제가 있었을 수 있고, 성격 형성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건과 인종과 민족, 그리고 국적은 큰 관련성이 없다고 본다. 초등학교 때 이민 갔어도 적응을 잘하고 미국 주류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번 사건은 미국 사회의 고질적이고 뿌리 깊은 병폐를 그대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총기 소유를 합법화하고 제대로 규제하지도, 또 규제할 수도 없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이번 같은 대형 살상 사건의 주범인 셈이다. 굳이 총기 소유 합법화의 법적 근거가 되고 있는 수정헌법 제2조를 들지 않더라도 미국 사회에서 총기는 함부로 다룰 수 없는 물신(物神)의 대상이다.

몇 년 전 미국에서 범죄를 줄이려면 총기를 보다 더 철저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발표를 했다. 참석한 미국 학자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현직 경찰 고위 간부마저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며 총기 규제를 반대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칼이 흉기로 쓰인다고 없앨 수 있느냐"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생활의 도구인 칼과 쓰일 데라곤 사람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일밖에 없는 총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었지만 미국 사회와 문화의 또 다른 특성으로 이해하는 수밖에 없었다.

총기 소유에 반대하고 반드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도 막상 총기 규제의 실효성 문제가 나오면 목소리가 작아진다. 대략 2억5000만 정으로 추산되는 총을 어떻게 회수하느냐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총기 회수의 어려움은 미국 경찰이 총기를 갖고 오면 소유 경위는 전혀 묻지 않고 현금 100달러를 주는 프로그램을 시행한 뒤에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데서도 여실히 알 수 있다.

불법 총기에 대한 마땅한 규제책이 없다는 점도 총기 규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불과 50달러만 주면 탄피 추적 등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불법 권총을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는 현실에서 총기 규제가 무슨 소용 있는가. 1911년 '설리번법' 제정 이후 총기 규제에 비교적 엄격한 뉴욕시만 해도 200만 정 이상의 불법 총기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94년 제정된 '브래디법안'과 같은 총기 규제 법안이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나마 브래디법안은 10년 한시법으로 제정돼 2004년 만료된 뒤 미국총기협회(NRA)의 강력한 로비 등으로 인해 폐기되고 말았다.

2005년 미국에서 발생한 1만4860건의 살인 사건 중 68%인 1만105건이 총기에 의한 것이다. 매일 28명이 총에 맞아 죽은 셈이다. 강도사건의 78.8%와 성폭행의 48.7%가 총기를 이용한 범죄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중요한 것은 총은 칼이나 몽둥이와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다. 칼이나 몽둥이로 어떻게 일거에 32명을 죽일 수 있겠는가.

이번 사건을 인종이나 민족 문제로 비화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해야 한다.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가족들에 대한 위로는 지나침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사건을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단호히 배척해야 한다. 오히려 총기 규제를 향한 커다란 첫발이 돼야만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총기 사고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우리지만 총기 밀반입에 대해 좀 더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창무 한남대 교수·경찰행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