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을 읽으면 아이 마음 느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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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듯 우리나라도 토속신앙이 남아있죠. 신내림을 믿고 아직도 상당수 가정에서 굿을 하고…." "사주나 궁합을 믿지 않지만 제 외숙모님이 세상을 떠난 후 굿을 했는데 무당이 외숙모와 똑같은 목소리를 내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11일 오전 11시 송파구 오금동 송파도서관. 청바지와 점퍼 차림의 30~40대 주부 10여 명이 한창 토론에 열중이었다. 이들은'살아있는 우리 신화'라는 제목의 책을 펴놓고 한창 토속신앙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날 토론의 주제는'신화'였지만 신내림을 받은 주변 사람들, 신앙문제로 시어머니와 갈등을 겪고 있는 친구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열띤 토론 끝에 결론은 자녀들에게'신앙'에 대해 어떤 가르침을 주어야 할 것인가로 끝났다.
토론 참여자들은 서울 송파구의 동화 읽는 어머니들의 모임인'민들레씨' 회원들. 이들은 매일 아침 이곳에서 동화·고전 등을 읽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달하기 위해 모이고 있다.
"처음엔 내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히고 싶고, 엄마들과 토론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 같아 몇몇이 모여 단순한 생각으로 모임을 만들었어요."
이들은 1998년 송파동 한 어린이 전용서점에서 처음 모였다.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히고자 서점을 누비던 10여명의 아줌마가 이 서점에서 만나 "우리 먼저 동화를 읽어보고 아이들을 가르치자"고 의기투합했다. '민들레씨' 모임이 만들어진 계기다.
이후 이들은 매주 한 번씩 모여 어떤 동화책이 좋고, 아이들에게 그 의미를 어떻게 설명하는 게 좋은지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스스로 동화를 읽다보니 '동화가 아이들의 눈높이를 이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깨달았다.
모임 회원은 1~2명씩 불더니 1년 뒤엔 20여명이 됐다.
회원이 늘자 욕심도 생겼다. "하다 보니까 좀더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싶고, 우리 아이에게만 배움을 줄 것이 아니라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더라고요."
99년부터는 사단법인 어린이도서연구회 서울지부에 등록했다. 체계적인 활동을 위해 '옛이야기' .'그림동화'. '창작' 등으로 분야를 정하고, 분과모임을 중심으로 팀을 세분화해 활동했다.
신입회원도 1년 주기로 모집했다. 모임이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은 회원 수가 40여명이다.
어느 정도 회원규모가 되자 2002년부터는 송파구가 운영하는 구립도서관에서 매일 오전 이들에게 시청각실을 빌려줬다. 그때부터 '민들레씨'는 불우한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공부할 수 있는 방을 내줬는데 우리도 뭔가 해야죠. 그래서 시작한 게 어린이들을 위한 책 읽기였죠."
유아에서 초등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주 세 차례씩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줬다. 또 1년에 두 차례씩 300여 명의 아이를 불러 모아놓고 '그림자극'과 '인형극', 그림책을 슬라이드화 한'빛 그림 이야기' 공연을 했다.
공연준비라는 새 일꺼리가 생긱자 이들은 다시 아이들 책 읽어주기를 담당하는 편집부,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문화부, 회원들을 교육하는 교육부로 활동분야도 나눴다.
또 2003년부터는 "도서관마저 구경꺼리인 불우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저소득층 자녀가 공부하는 거여동의 한 시설과 육영학교 등을 찾아 1주에 한 차례씩 방문봉사도 하고 있다.
여은선(41·여) 회원은 "모임에 들어오기 전에는'내 아이가 최고'라는 생각에 젖어 살았지만 방문봉사활동을 하다보니 '모두가 내 아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모임은 회원들의 인생 전환도 유도하고 있다. 8년차 회원인 이임순(39)·백현진(41) 씨는 도서연구회 연수과정을 이수한 뒤 서울지부에서 옛이야기와 그림책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 일부 회원들은 그만뒀던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방송통신대에 입학,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또 공부에 지친 아이들에게 '우리 것'을 알려줄 생각으로 회원들이 아예 나서 고무줄놀이·강강술래 등 전통놀이도 익히고 있다.
황숙자(39)회장은 "동화책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느끼고, 아이들 마음을 이해하면서 가족 모두의 행복을 알게 됐다"며 "우리가 느끼는 '작은 행복'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최석호 기자
사진=프리미엄 이성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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