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구 헌금공천의 위법성(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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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야당의 전국구 헌금공천 문제가 법적·정치적 시비거리가 되고 있다. 검찰이 작년 광역의회의 정당공천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전국구 공천과 연계된 헌금을 수사하겠다고 밝히자 민주당이 이에 극력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금공천은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법정신과 현실정치가 미묘하게 부딪치는 쟁점이어서 어느 한 면만 보고 선뜻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미묘한 문제라고 해서 덮어두기만 해서는 안되며,법과 현실을 가급적 일치시켜 새로운 관행을 시급히 정립해야 한다.
수사를 하겠다는 검찰의 논리와 입장은 현행법상 어떤 종류의 정치자금이든 정치자금법의 규정에 의하지 않으면 위법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야당은 문제의 전국구 헌금이 특별당비이며 당원이 내는 당비는 제한이 없다고 주장한다. 정주영씨가 사재를 얼마나 쏟아붓든 문제가 안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자금법은 정당이 공직의 추천 대가로 당비를 받는 것은 금하고 있다. 따라서 전국구의 후보 추천을 대가로 당비를 받는 것은 위법이 된다. 검찰은 상식적으로 판단해 헌금자들이 전국구 보장없이 30억원,50억원의 당비를 냈겠느냐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위법성있는 헌금을 방치하고 의원직이 매관매직의 대상이 되게하는 것은 부정의 원류를 눈감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전국구후보의 헌금은 어디까지나 당의 선거자금으로 쓰이는 당비이며,당헌·당규에 당원의 특별당비를 규정해 놓고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법논리를 떠나 정치자금이 여당에 편중되는 현실에서 야당이 특별당비를 거두는 것은 일종의 생존전략이며 30년 가까이 관례화되다시피 해온 야당의 헌금을 14대총선에 와서 문제삼는 것은 일종의 야당탄압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정치현실에 입각한 야당의 정상론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또 전국구 헌금이 더 노골적이었던 13대까지는 가만히 있다가 검찰이 유독 이번에 선거공고가 임박한 시점에서 수사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선 것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가 현실론·정상론에 밀려 언제까지 덮어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국민정서와 정치발전이란 기준에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법률적 다툼은 전국구 헌금이 특별당비냐,공직을 대가로 한 불법자금이냐에 있다. 이 점은 검찰이 소신을 갖고 수사해 법원의 판례를 구해볼수 있을 것이다.
야당도 전국구 헌금을 무조건 정치적 논리로 합리화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야당은 작년 정치자금법 개정때 국고보조금을 대폭 올리지 않으면 전국구 헌금을 계속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었다.
그 결과 보조금이 유권자 1인당 4백원에서 6백원으로,선거가 있을 때는 매번 3백원씩 더 받을수 있도록 고쳐졌다. 또 부족하나마 기탁금·후원회비 등 전국구 헌금이 아닌 합법적 자금동원의 길도 마련되어 있다.
검찰권 행사방법이 정치탄압이란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한것은 유감이지만 어떤 경우든 의원직이 돈에 팔리는 풍토는 고쳐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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