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차 개방 「불의 생색」/배명복 파리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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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93년 1월1일로 예정된 유럽공동체(EC) 시장 단일화를 앞두고 프랑스 자동차업계가 초비상이다. 외제차의 수입을 더이상 규제할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EC이외 지역에 대해 그동안 프랑스는 쿼타를 설정하고,까다롭고 복잡한 수입절차를 통해 자동차수입을 규제해왔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더이상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EC내 상품 이동에 있어 국경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영국이 됐든,벨기에가 됐든 다른 나라를 통해 얼마든지 일본차나 한국차가 프랑스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유럽에서 가장 높은 보호주의의 울타리에 숨어지내온 프랑스 자동차 메이커들로선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 셈이다.
프랑스정부가 한국산 자동차 수입을 허용키로 한데 대해 프랑스내에서는 관심과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을 특집으로 다룬 기사가 신문에 실리고 있는가 하면 어떤 차종이 들어올지를 소개하는 성급한 기사도 보이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한국산자동차가 「제2의 일제차」가 되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프랑스는 성능시험후 내주게 돼있는 규격인 증서 발급을 지연하는 방법으로 한국차 수입을 막아왔다. EC시장단일화를 앞두고 프랑스가 한국차에 대해 규제를 풀 수 밖에 없을거라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단지 문제는 그 타이밍이었다. 그 타이밍을 지금으로 잡은 것은 프랑스정부의 냉정한 계산결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자동차시장 개방과 TGV(프랑스 고속전철)를 맞바꾼다는 프랑스정부의 계산은 결국 협상술이다. 그러나 93년 1월1일이라는 개방시한을 앞두고 날짜가 지나면 지날수록 프랑스는 협상에서 무게를 잃을 수 밖에 없다」(르 피가로지 13일자). 자동차시장개방이라는 카드가 한국에 대해 갖는 효용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솔직한 지적이다.
프랑스가 우리나라에 대해 자동차시장을 개방했다고 해서 우리가 고속전철사업자 선정에 부담감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다. 이미 말한대로 어차피 열것을 조금 일찍 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무슨 큰 「선심」이라도 베푸는 것처럼 생색내는 프랑스정부의 얄팍한 「상술」이 얄미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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