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칼럼작가의 「르포집」… 당국 삭제요구(지구촌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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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라크 소령과 나눈 “금지된 사랑”/쿠웨이트서 출판 논란/“전쟁책임을 희석” 우려 당국/“인위적 적대감은 곤란” 작가/“진실한 내용인 만큼 출판은 당연” 귀추 주목
쿠웨이트의 한 여성칼럼니스트가 이라크군인의 생사를 초월한 사랑을 내용으로한 르포집 출판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쿠웨이트 정부가 국민의 대이라크 안보의식 약화를 우려,내용의 삭제를 요구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의 르포는 쿠웨이트의 영향력 있는 일간신문 알 와탄지의 고정칼럼니스트인 포시아 도라이씨(38)가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 7개월동안 있었던 이라크군인과 쿠웨이트 여성간의 애틋한 사연 20건을 『점령지에 핀 사랑』이란 제목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쿠웨이트 검열당국이 출판금지를 통보한 사연중 하나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기간인 90년 10월 부상치료를 위해 쿠웨이트 병원에 입원했던 이라크 병사 20여명이 의문사 당한다.
이라크의 쿠웨이트주둔군 소속 파리스다크 소령은 쿠웨이트 간호사 주베이다양이 이들에게 독약주사를 놓은 혐의를 잡고 그녀를 취초하다 사랑에 빠지고 만다.
파리스타크 소령은 자신의 빌라로 취초실을 옮겨 동료보안요원에게는 그녀를 고문하는 것처럼 속이고 극도의 긴장속에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소속부대로부터 수사결과 제출독촉이 잦아지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파리스다크 소령은 결국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고 그녀를 구출키로 결심,사흘간의 짧은 사랑을 끝으로 주베이다양을 사우디아라비아로 탈출시키기로 결단을 내린다.
이라크군의 약탈과 강간 등으로 아수라장이 된 쿠웨이트시티 길모퉁이.
파리스다크 소령은 함께 남겠다고 발버둥치는 주베이다양을 친구의 군용지프에 억지로 밀어넣으면서 「당신의 사랑스런 눈길을 위해…나의 목을 희생하겠소」라고 울먹인다.』
도라이씨는 『제보자의 신변안전을 위한 약간의 변형을 제외한 내용 자체의 진실성은 칼럼니스트인 본인이 직접 취재한 만큼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당국의 삭제압력에 『국민의 귀를 막고 인위적인 적대감을 조장해 이루어낸 안보의식은 사상루각』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라크인의 잔학상 부각에 여념이 없는 쿠웨이트 당국으로서는 어림없는 일이지만 문제는 도라이씨의 쿠웨이트내 여론에 미치는 비중이 국민적 지지기반이 허약한 알 사바왕 정부로선 섣불리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데 있다.
쿠웨이트 당국은 이번 르포집이 문제가 되자 지금까지 별 문제가 되지않던 그녀의 칼럼들중 성관련 묘사부분을 문제삼아 생활규범인 회교율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적대감이 고조되고 있는 이라크와 쿠웨이트,그 국경선을 넘어 남편을 맞은 한 칼럼니스트가 진실을 좇아 출간하려는 르포 『점령지에 핀 사랑』이 국가안보를 우려하는 정부를 설득하고 빛을 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이기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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