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허 현진건은 우리 국민에게 널리 알려진 소설가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현진건의 작품은 약방의 감초격으로 등장한다. '빈처''고향''운수좋은 날''술 권하는 사회''B사감과 러브레터' 등 그가 남긴 작품들은 한결같이 일제하에서 수탈받고 고통받던 우리 민족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식민지 시대를 온몸으로 지켜온 빙허의 고택이 감쪽같이 철거된 사실이 드러났다. 관할 구청인 서울 종로구청과 상급기관인 서울시가 수수방관하는 사이 또 하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1936년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재직할 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옹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에 연루돼 1년간 옥고를 치른 빙허는 이 집에 머물면서 일제의 탄압에 맞서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장편 역사소설 '무영탑'과 '흑치상지'등의 작품을 집필했다.
빙허는 오욕으로 점철된 일제 암흑기를 온몸으로 밝힌 횃불 같은 존재였기에 후손들이 그 업적과 자취를 기리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빙허의 고택이 철거됐다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고택의 멸실과 함께 빙허의 삶과 관련된 모든 흔적이 지워졌다는 것이다. 빙허의 대구 생가와 소설 '빈처'를 집필한 관훈동 고택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빙허의 숨결은 이제 그 어느 곳에도 남아 있지 않다.
개발의 논리를 앞세운 정책으로 인해 문화예술인들의 흔적이 이처럼 지워지고 있다는 점은 실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문화예술가들이 남긴 작품도 중요하지만 삶의 모습이 담긴 유산이야말로 물질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 것이다. 이제라도 서울시는 철거된 부지를 매입, 현진건의 삶과 문학을 기념하는 장소로 꾸며 후세 교육의 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최진규 충남 서령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