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농촌 초등학교로 도시학생들 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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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치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운동장 느티나무 아래서 서울 친구의 그림을 보면서 김용택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임실=프리랜서 장정필]

23일 따뜻한 봄 햇살이 비치는 전북 임실군 덕치초등학교 2학년 교실. 대길(9)이가 도시에서 온 친구들에게 지게.호미 등을 그려 가면서 자랑스럽게 농사짓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엄마, 아빠랑 같이 밭에 가서 호미질을 하고 잡초를 뽑은 다음에 퇴비를 지게로 옮기는 거야."

서울에서 온 민성(9)이는 호미와 지게 그림을 보면서 "나도 이제는 농사를 지을 줄 알아"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덕치초등학교는 전교생 39명에 불과한 섬진강변의 초 미니학교. 이중 10명은 서울.광주.전주 등에서 전학을 왔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교사는 "도시의 회색 콘크리트 건물만 보고 자란 아이들이 이곳의 산과 들에서 접한 냉이꽃.개불알풀꽃 등을 그린 것을 보면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잃어버린 감성을 되찾는다"고 말했다.

'농촌학교의 교육 실험'으로 널리 알려진 덕치초등학교에 도시의 학생들이 몰린다 (중앙일보 11월 25일 1면 보도).

올 초만 해도 전교생의 30%에 해당하는 13명이 도시출신 학생이었으나 3명이 집안 사정 등으로 되돌아 갔다. 대신 다음달이면 4 ̄6명의 도시 어린이들이 더 전학을 올 예정이다.

이 농촌 학교에 도시 아이들이 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도시학생을 위한 농촌유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부터다.

덕치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섬진강 시인 김용택 선생님의 지도아래 미술수업을 하고 있다.[임실=프리랜서 장정필]

이 프로그램은 도시 학생들에게 자연체험의 기회를 주고, 학생 수가 줄어 폐교위기에 몰린 농촌학교에 활기를 불어 넣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김교사와 교육장, 생태건축가, 교수 등이 머리를 맞대고 프로그램을 짰다.

도시어린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정규 수업 외에 계절별 농사.생태 체험을 한다. 3 ̄4월에는 텃밭에 나가 감자를 키우고, 섬진강변의 들꽃을 관찰한다. 산나물캐기, 화전 부침, 쑥 개떡 만들기 등은 기본 프로그램이다.

'농촌유학 프로그램' 보도 이후 서울.부산 등의 학부모들에게서 수백통의 전화문의가 쏟아졌다. 또 겨울방학과 토.일요일을 이용해 아이들과 함께 직접 학교를 찾아온 학부모들도 수십명에 이른다.

◆전학 온 학생 수용시설 부족=학교 주변에는 이들 학생과 학부모를 수용할 공간이 아직도 크게 부족하다. 이미 학교의 관사 3채는 전학 온 학생과 부모들이 차지했다. 주변 마을에 빈집이 있지만 허물어져 가는 곳이 많아 쉽게 들어가 살 형편이 못된다. 때문에 대부분 학부모와 학생들은 아쉬운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교육청은 임실군과 손잡고 도시 유학생들을 위한 주거공간 확보에 노력을 쏟고 있다.

우선 이르면 올 하반기께 학교 안에 이동식 주택을 건립할 계획이다. 학교 주변 천담마을에 도시민들이 와 머무를 수 있는 생태마을 건립을 장기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또 운동장에는 숙소를 갖춘 도서관 겸 주말 학당을 만들어 시인.소설가 등이 문학교실을 열고 도예교실, 모닥불과 시체험 등 행사도 할 계획이다.

서울 응암초등학교에 다니다 이 학교로 옮겨온 김민지(5학년)양은 "서울에서 밤 늦게까지 학원에 다녀 힘들었는데 여기서는 친구들과 산과 들에서 하루종일 뛰놀아도 지루한 줄을 모른다"고 말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농촌 유학 프로그램=6개월 ̄1년간 덕치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오전에는 학과공부, 방과 후에는 생태체험 위주 학습을 할 수 있다. 주변 텃밭과 논에서 직접 농사를 짓고 섬진강에서 가재.송사리 잡기도 한다. 도시 학생들이 전학을 오는데 제한이 없고, 학비를 더 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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