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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4년생 취업 불안에 젊은 병든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K대국사학과 졸업반인 박모군 (25) 은 새벽 5시30분 썰렁한 자취방을 뒤로한채. 새벽바람을 맞으며 서둘러 학교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면 오전6시30분, 아직 채 동이 트기도 전이지만 도서관 열람실은 이미 서너자리를 제외하곤 팍 차있다.
박군은 열람실 곳곳에서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열심히 수험서를 들추고 있는 낯익은「취업재수생인 동료들을 발견하고 쓴웃음을 짓는다.『다른 친구들은 지금쯤 넥타이를 매며 출근준비를 하고 있을텐데….』
박군은 갑자기 자신이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둘러 책상에 앉아 책을 펴들었다.
강원도 태백시가 고향인 박군은 1년간의 재수끝에 85년 6.3대1의 경쟁을 뚫고 대학에 들어올때까지만 해도 세상에 부러울게 없었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은 말그대로 「하늘의 별따기」였고 지방출신인 박군에겐 더욱더 그랬다.
대인준비기간의 「인고생활」을 보상이라도 하듯 박군은 대학1,2년간을 남들처럼 후회없이(?) 놀았다.
미팅·MT·동문회·체육대회·잦은 술자리….
그러나 군복무를 마치고 3학년에 복학하면서부터 모든것이 달라졌다.
4학년 복학생 선배들의 우울하고 맥빠진 얼굴을 보면서 『나도 이제 멀지 않았다』 는 초조감이 엄습해온 것이다.
『대입관문도 어려웠지만 우리같은 비명문대 출신은 취업이 더 어렵다.』는 선배들의 말이 항상 가슴을 짓눌렀다.
단과대학당 D여장밖에 안들어오는 기업의 특채원서는 취업희망자 숫자의 10%에도 못미쳐 성적순으로 자르거나 복권처럼 추첨을 하는 현실.
박군은 공채에 응시키로하고 L그룹면접시험을 봤지만 비명문·비인기학과여서인지 면접관은 몇마디 물어보지도 않았다.『내년4월까지 계속 시험을 봐야죠. 사회생활 시작부터 이렇게 좌절을 맛봐야하는 처지가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대4병(취업을 앞둔 대학4년생들의 불안증세) 대열에 낀셈이죠.』
해마다 기업의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서울대·고대·연대등 일부 명문대의 인기학과생들을 제외한 여타 졸업반학생들은 박군처럼 속칭 대4병을 단단히 앓고 있다.
몇차례 입사에 낙방한 학생들은 갑자기 글씨가 잘 안보이고 온종일 멍한 상태로 지내는가하면 면접에 대한 공포때문에 우울증·소화불량증세를 보이고 심하면 정신질환으로까지 가게되는 모진 병이다.
기업마다 인턴사원제·특채등으로 명문대생들을 골라가 취업난은 더욱 십각일로.
학생들은 졸업시즌이 가까워오면 「취업준비위」를 만들고 취업전문가들을 초빙, 면접요령을 교육받는등 자구책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바늘구멍같은 입사관문 때문에 갖은 노력도 「언발에 오줌누기」격일 뿐이다.
여대생들의 취업난은 훨씬 더 심각한 실정.
정부가 남녀 차별고용금지 법령까지 만들어놓았지만 여대생의 대기업취업은 「낙타가 바늘구멍통과하기」이고 중소기업도 그나마 「연줄」이 없으면 번번이 허탕이다.
『조그만 출판사라도 들어가려고 했지만 지원자들 대부분이 저보다 학벌이 좋더군요. 말단 공무원직에라도 응시해보려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D여대 국문과 최모양(23)의 우물한 말이다.
국민대 취업정보실 김창숙씨(40)는 『학생들이 안스러워 보이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어요.
과거엔 추천서만 갖고가면 합격이 보강됐지만 최근엔 기업의 특채원서를 갖고가도 다시 시험을 봐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라며 『기업들이 실력보다 대학간판을 중시, 자칫 우수한 인재를 사회에서 놓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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