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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속의 진실(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연전에 작고한 이해랑선생의 수필가운데 「얼굴의 참모습」이란 글이 있다.
『사람의 얼굴은 세월따라 흘러 풍화되어 그의 모습을 바꾼다. 두껍게 가려진 많은 가면의 얼굴속에 파묻혀 진실한 얼굴은 언제까지나 그 정체를 드러내지 못하고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자기 얼굴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고 영겁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 얼굴의 참모습을 지닌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인간의 참모습을 다른 예술도 아닌 「순간의 예술」이라는 연극무대 위에 실현시키고자 일생을 노력한 연극인이 이해랑씨다.
생전에 연극을 「배우의 예술」이라고 신봉한 그는 배우의 얼굴에는 세가지가 있다고 했다. 자기 본래의 얼굴과 변혁을 꾀하여 그가 창조하려는 얼굴,그리고 남에게 비치는 얼굴,즉 관객이 보는 얼굴이다. 이 세가지 본질적인 얼굴을 무대위에서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따라 배우의 생명은 살고 죽는다.
그는 인간을 가장 진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은 연극밖에 없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항상 무대위에 표현된 삶보다는 그 뒤에 더 크고 진실된 삶이 도사리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속된 배우는 연극현상의 인생을 표현하고 있지만 진실한 배우는 연극속에 또 하나의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 인생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무대위에 보이는 것이 연극의 무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참모습을 연극속에 용해시키려한 그의 예술철학은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달인적 모습은 비단 연극에서 뿐만 아니라 그가 한때 몸담았던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정치,말도 말아요. 예술은 조화속에 창조를 찾는 작업인데 정치는 대립과 충돌속에 이루어지고 있어요. 한마디도 비정의 세계지요.』 그는 우리의 정치풍토 속에는 창조의 쾌감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 이해랑선생이 「연극·영화의 해」 마지막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되었다. 더구나 오는 12일에는 그의 유고를 모은 『허상의 진실』이라는 연극논집의 출판기념회와 함께 그의 이름을 딴 연극상 수상기념 공연이 있다. 축하할 일이다.<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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