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남발…권위 "실추"|문예진흥원, 국내시상 실태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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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세밑 문단에 술이 넘쳐흐르고 있다. 하루에도 몇 종류씩의 문학상이 시상되고 수상자들은 뒤풀이로 으레 술자리를 마련한다. 얼굴이 웬만큼 알려지거나 얼굴을 좀 내밀려는 문인들은 빠짐없이 이러한 술좌석에 참여하느라 한해를 그야말로 술독에 빠져 보낸다.
문학질이 남발돼 과소비되고 있다. 문예진흥원은 최근 국내문학상의 실태를 조사, 기관지인 근간『문학예술』12월호에서 특집으로 다퉜다.
작가 권태현씨가 정리·분석한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현재 시행되고 있는 문학상은 모두 1백51종류. 이 숫자에는 신인발굴에 초점을 맞춘「신인문학상」과 각종 문화상의 문학부문 상은 제외되었다. 때문에 순수한 문학상 1백51종의 복수장르 수상, 각종 문화상의 문학부문상까지 합치면 한해 문학의 이름으로 찬을 받는 기성 문인의 숫자는 3백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문학상중 가장 오래된 것은 1955년 제정된「동인문학상」과 「현대문학상」이상 외에 2개가 더 제정돼 50년대 4종, 60년대 9종, 70년대 31종. 80년대 92종, 그리고 90,91년도에 15종의 문학상이 각각 만들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70년대부터 문학상이 급격히 불기 시작한 것은 경제력 향상에 따른 문학인구의 팽창과 창작활동의 활성화 결과로 볼수 있다.
질을 제정하고 운영하는 주최측을 분류하면 공공기관3, 협회나 단체 66, 언론기관5, 잡지·출판사 55, 개별적 질운영위원회 19, 기타 3종류로 나타났다. 문인들의 친목체인 협회나 단체, 그리고 잡지·출판사가 80%에 이르는상을 주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상 분야별로 살펴보면 종합 40, 시 31, 시조 13, 소설 19, 아동문학 26, 수필4, 희곡 1, 평론 3, 번역2, 기타 12종류다. 지역별 분포는 서울에 전체문학상의 80%인 l백20종과 각 도에 2∼6종이 있으나 제주도에만 1개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현역문인으로서 문학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횟수는 6회로 시부문의 박재삼, 소설부문의 김원일·전상국·이동하, 아동문학부문의 김요섭씨등 5명이 이에 해당한다.
문학상을 3종류 이상 수상한 현역문인이 61명이나 되고 「백면서생」을 제외, 웬만한 주변만 있으면 등단 몇년이내에 상을 거머쥐는 문학상 범람시대. 상이 본래의 빛깔을 잃어가지 않나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문학상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80년대 후반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한 우려의 핵심은 파벌·인맥에 의한 나눠먹기, 상업성 아니면 정반대로 공명심에 의한 로비로 상의 권위가 실추됐다는 것이다. 80%에 이르는 문학상을 협회나 단체, 혹은 잡지사나 출판사에서 주관하고 있음을 볼때 이같은 문제점은 필연적으로 지적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문학상을 어떠한 방법으로 공정하게 운영, 그 객관성을 인정받으며 나름의 수준에서 권위를 지켜나가느냐가 문제다. 이미 제정된 상을 타의로 폐기할수도 없고, 또 문학상 제정은 줄곧 이어질 것이므로 상을 특화해야 된다는 지적이다.「×××문학상」하고 작고문인의 이름으로 제정된 상이면 그 문인의 문학세계와 같은 축에 있는 문학, 출판사에서 상업성 목적으로 제정했으면 차라리 터놓고 대중성 있는 작품에 수상하는 식 등으로 상을 개별화·특성화시키라는 것이다. 그렇지않고 한 장르에서 이 상도, 저 상도 최고작품을 뽑는다고 대든다면「좀체 질적인 성장은 못 보이면서 먹고 보자는 식의 문학상만 늘고 있다」는 문인으로서는 참으로 부끄러운 비난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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