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넘어 예술을 판다' 전자제품에 예술품 입히기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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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초 서울 역삼동 GS타워. 이 곳에 사무실을 둔 LG텔레콤 마케팅팀은 '캔유DMB(위성방송)폰'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이 팀은 특히 캔유폰의 표면 디자인을 둘러싸고 격론을 벌였다. 이 때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휴대 전화기에 순수 미술 작품을 그대로 넣으면 어떻겠냐는 한 팀원의 아이디어를 듣고 팀원들은 무릎을 쳤다.

이 회사 강현욱 과장은 "캔유폰 표면이 하얀점에 착안한 아이디어였다"며 "디자인에 예술작품을 끌어들이자는 의견은 신선했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소비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들고 다닐 수 있고 제품의 품격도 한결 높아질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LG텔레콤은 바로 유명화가들과 접촉했다. 호당 50만원대를 호가하는 그림을 그리는 이두식 교수(홍대 미대 학장 )와 만화가 이현세씨 등을 만났다. 화가와 만화가 5명씩 모두 10명이 '캔유폰'에 작품을 내기로 했다. 특히 이 교수는 "순수 미술이 대중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라며 반겼다. 작가마다 8~10 개의 작품을 내놓았고 LG텔레콤은 이들 모두에게 총 8000만원의 그림 값을 치렀다. 캔유폰은 회사가 의도한대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일반 소비자는 물론 미술 매니어들조차 캔유폰을 소장 가치가 높은 제품으로 꼽는다.

예술작품을 정보기술(IT)과 전자제품의 디자인에 접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LG전자는 한글을 주제로 한 패션디자인을 하는 이상봉씨의 한글디자인을 활용해 '샤인 디자이너스 에디션'을 선보여 재미를 봤다. 샤인 디자이너스의 뒷면에는 윤동주의 '별헤는 밤'이란 시구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어 젊은 연인들의 인기를 얻었다.

1월 출시직후 한 달도 안돼 2만대가 동이 났다. 휴대폰에 넣은 한글디자인은 이씨가 파리 패션쇼에서 발표했던 의상에도 새겨졌던 것이다.

LG전자의 MC디자인센터 차강희 소장은 "이 제품의 제작 단가가 일반 제품보다 훨씬 높아 한정판으로 만들었다"며 "'나만의 휴대폰'을 갖고 싶은 소비자들의 호응이 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앙드레 김의 꽃무늬를 생활가전의 전면에 그대로 넣었다. 한국의 전통미를 살리고 서양 황실의 화려함을 표현하기 위해 꽃무늬를 택했다고 삼성전자측은 설명했다. 삼성전자 채희국 과장은 "앙드레 김의 작품은 지펠이나 하우젠 같은 고급 브랜드에만 넣고 있다"며 "실내를 갤러리처럼 꾸밀 수 있도록 예술가치가 높은 디자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LG전자의 트롬세탁기나 김치냉장고 등에는 '꽃의 화가'로 유명한 서양화가 하상림의 꽃작품이 그대로 입혀져 있다.

삼성전자측은 "기술의 발달로 제품의 성능은 엇비슷해졌고, 외형이나 색깔에 치중하는 디자인 경쟁도 한계에 달했다"며 "예술작품을 제품 디자인에 활용하는 트렌드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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