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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차례 총무회담끝에 “편법처리”/새해예산안 “난산” 표결통과 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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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야 조정 내용보다 명분 찾기 안간힘/나눠먹기 악습깼으나 생색삭감에 그쳐
3일 새벽 국회에서 표결처리된 92년도 예산안은 예결위 계수조정작업에서 일체 항목조정없이 「순삭감」만으로 이뤄졌다.
여야가 예산안 조정과정에서 지역개발사업비 증액등 나눠먹기식 뒷거래를 했던 과거 관행을 깼다는 점에서 평가됨직하다.
그러나 33조5천50억원규모의 정부제출 예산안을 3천50억원 삭감하는 과정에서 여야는 국민세부담을 전혀 줄이지 못한채 편법 조정으로 일관한 것은 국회 본연의 임무를 저버렸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됐다.
특히 민자당은 날치기 법안처리당시 재무위의 예산부수법안까지 한꺼번에 통과시켜 세입을 미리 확정시켜놓는 바람에 그후 예결위 예산안심사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왔다.
「세수삭감없는 세출삭감」이라는 무의미한 논쟁이 바로 그것으로부터 비롯됐기 때문.
○…민자당측은 세입삭감방법에서 정부의 강한 반발에도 ▲관세에서 1천억원 ▲세외수입에서 2천50억원을 깎자는 민주당의 최종 협상안을 전부 수용,「찬반토론→표결처리」라는 좋은 모양새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세외수입은 물론 관세를 깎는다고 해서 국민의 세부담이 줄어 들지 않는데다 양자 모두 예상 수입보다 훨씬 짜게 세입추계를 해놓은 것들이어서 장부상 삭감효과밖엔 없다. 특히 관세수입삭감에서 세율을 조정하지 않고 추계수입액에서 1천억원을 깎는데 그친 것은 여야가 모두 무책임한 편법의 발상에만 매달렸다는 신랄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세외수입중 벌금·몰수금 5백억원(세입추계 4천억원)을 깎겠다는 것은 이를테면 교통범칙금 등을 그만큼 안걷겠다는 얘기. 따라서 이같은 조정은 그야말로 비현실적이며 「눈가리고 아옹하는 격」이라는 비난이 무성.
이같은 무원칙·편법예산안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에 약 50건에 달했던 지역사업비 나눠먹기가 없었던 점은 평가대상.
민주당으로서는 사용내용이 불분명하거나 안기부예산으로 일부 전용되는 예비비중 9백억원 목표액보다 훨씬 상회하는 1천6백70억원을 삭감했고 방위비에서도 상징적으로나마 1백50억원 깎은 것은 그나마 성과.
예결위원들이 항목조정에 손을 안댄 것은 변칙예산안 성립의 공동책임자로서 또다시 나눠먹기식으로 예산을 짜깁기할 경우 쏟아질 여론의 화살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게 국회주변의 분석.
예산안 내용 자체는 전례없는 파행성을 띠고 있으나 여야가 진통끝에 협상에 성공함으로써 민자당은 날치기 오명을 다소 씻을 수 있었고 민주당은 명분과 3천억원선 예산삭감의 실리를 어느정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예산안 법정처리시한인 2일 온종일 여덟차례의 총무회담을 갖는 진기록을 세우면서 「합의점」도출을 위한 진통을 거듭.
아침부터 예정됐던 예결·법사위와 오후 2시 예정의 본회의가 시간대 단위로 순연을 거듭했고 총무들도 의원회관·63빌딩·국회귀빈식당 등으로 옮겨가며 공식·비공식 절충을 했는데 심지어 본청 지하1층 엘리베이터 앞을 약속장소로 잡는 촌극도 연출.
대충 3천억원선에서 삭감규모의 「접점」을 찾은 여야가 이날 가장 신경을 곤두세웠던 부분은 「명분찾기」와 편법의 균형예산짜깁기를 위한 「세입부문삭감」문제.
이날 김종호 민자당총무는 『3천억원선에서 깎을테니 표결에 응하라』고 제의했고 김정길 민주당총무는 『총규모의 1%인 3천3백50억원을 깎을 경우에만 표결에 참가하겠다』고 맞서 여야 모두 삭감내용보다 「모양갖추기」에 주력.
세입부문삭감과 관련,민자당은 이날아침 최각규 부총리·이용만 재무장관·손주환 청와대정무수석·김윤환 총장이 참석한 당정회의를 갖고 세외수입 1천5백억원,재정투융자특별회계(재특)출연금 1천5백억원이라는 최부총리의 삭감항목 아이디어를 채택한뒤 이를 민주당에 제시.
당초 야당측은 별다른 저항없이 이를 덥석 수용하는듯 했으나 뒤늦게 김대중 대표가 『이안대로라면 결국 1천5백억원 삭감에 불과하다』고 지적,재특출연금대신 「관세수입삭감안」을 관철시키도록 지시해 과거 재경통의 면모를 과시.
이같은 「색다른」제의에 당황한 여당측은 곧 긴급대책회의를 가졌고 최부총리가 『이를 받아들일 경우 세수추계의 잘못을 자인한 꼴』이라며 강력 반발했으나 김총무가 『여기서 또 틀어진다면 총무직을 사퇴하겠다』고 「비장한 각오」로 최부총리를 설득.
이에 따라 여야는 오후 10시쯤 마지막 총무회담에 이르러 실마리를 풀었는데 이때 양당 총무는 『힘든 하루였다』며 서로 상대방을 치켜세우는 덕담으로 이날 「전투」를 마감.
○…이같은 여야합의에 따라 오후 10시45분쯤 가까스로 속개된 심야 예결위 계수조정소위는 수월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양곡관리기금 출연금 5백억원삭감(정부제의)과 제주도개발비 1백억원증액(여당제의)문제를 놓고 여야가 다시 격돌,두차례나 정회소동.
야당측은 『양곡관리기금삭감은 정부의 추곡수매안을 수정할 여지를 원천봉쇄하는 것이며 제주개발비증액도 이 법안이 통과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증액하면 건설위의 날치기처리를 인정한 셈』이라고 발끈.
결국 정부·여당의 제의는 철회되고 이례적으로 항목조정없이 순삭감만 된 상태로 91년 막바지 계수조정소위는 3일 오전 3시30분에 마감.
홍의표 민자당간사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이로써 여야간 나눠먹기인상은 불식됐다』고 강변.
이어 열린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유준상 의원(민주)은 반대토론을 통해 『이번 예산은 예산회계법 기틀을 벗어난 탈법적 성격으로 국민세부담이 줄어들지 않고 선거를 의식한 초팽창』이라고 비난.
예결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예산안은 이어 바로 열린 본회의에서 오전 4시44분 기립표결에서 재적의원 2백62명중 찬성 1백96,반대 65,기권 1표로 통과됨으로써 대단원.<전영기·정선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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