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적감정 “줄다리기”(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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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7일 오전 김기설씨 분신 자살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전민련 사회부장 강기훈 피고인(27)의 유서대필여부에 대한 마지막 공방전이 벌어진 서울형사지법 대법정.
강피고인이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고 감정한 일본인 오니시 요시오씨(73)가 현해탄을 건너 변호인측 증인으로 증언대에 섰다.
『우리말을 모르는 일본인이 한글을 감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검찰은 증인채택을 반대했으나,재판부는 5분간의 숙의끝에 「재판의 공정성」을 내세워 오니시씨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우리말을 전혀 못하는 오니시씨를 위해 법률 용어와 일어에 모두 능숙한 사법연수원 일어강사가 특별히 통역을 맡았다.
백발의 오니시씨는 자신이 『일본경시청으로부터 감사장까지 받은 필적감정가』라고 강조하며 가져온 감사장을 꺼내보이려고까지 했다.
검찰과 변호인측은 행여나 통역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되지나 않을까 우려해 일어에 능통한 검사와 변호사를 각각 데려오는등 긴장하고 있었다.
『한국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이 증인의 감정결과와 상반되는데도 자신의 감정결과를 확신하고 있는가』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오니시씨는 주저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필적감정때 사용했다고 밝힌 비교확대기와 고정밀 비교확대기는 필적감정용이 아닌 인장을 감정하는데만 쓰는 기구』라는 증언이 나오자 검찰과 변호인들은 희비가 엇갈리는 표정이었다.
이어 반대신문에 나선 검찰측도 13시간이 넘도록 끈질기게 『원본이 아닌 복사본으로 필적감정을 할 수 있는가』『사인펜으로 쓰여진 유서를 왜 감정서에서는 만년필과 같은 필기구가 사용됐다고 했는가』등 총공세를 펴 오니시씨로부터 『일부 잘못이 있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결론을 근거로 유서가 대필됐다고 주장하는 검찰과 나름대로의 논리를 내세우는 오니시씨 사이의 공방이 한일간 「필적감정의 자존심대결」로 비화된 느낌이었다.
유서 대필을 둘러싼 수많은 상반된 증거와 주장들 속에서 재판부가 과연 어떻게 「단 하나뿐인 진실」을 찾아낼 수 있을는지 더욱 궁금해졌다.<남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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