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수매제도,근본개혁 있어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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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년도 쌀 수매에 대한 정부안이 확정 발표됨으로써 연례행사로 굳어진 쌀수매의 진통은 이제 국회의 동의절차라는 마지막 고비만을 남겨두게 됐다.
이번 정부안의 특징은 일반미값의 인상폭을 이례적으로 낮게 잡은 대신 매입량을 당초안보다 대폭 늘려 잡았다는 점이다. 조경식 농림수산부 장관은 생산비 인상분 5.2%에다 소득보상분을 얹어 7%로 인상률을 결정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것은 지난해의 일반벼 인상률 10%보다 낮고 양곡유통위원회가 건의한 인상폭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따라서 정부가 정한 수매가격은 한마디로 농민들의 이해관계보다는 수매가 인상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더 크게 감안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에 반해 금년도 쌀 생산량이 작년보다 다소 줄어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수매량을 작년과 동일한 8백50만섬으로 책정한 것은 수매량의 조정으로 낮은 가격을 보상하려는 의도를 읽게 한다.
쌀수매의 최종안을 확정하기까지 정부가 고심한 흔적은 군데군데 엿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양과 값의 양면에서 생산자인 농민들의 요구와 정부안 사이에는 아직도 큰 차이가 남아있어 국회의 심의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의 최종안이 어떤 수준에서 매듭지어질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금년에도 역시 최초의 정부안이 정부·여당협의,국회심의의 단계들을 거치면서 여당과 국회의 생색용 추가분이 마치 사전에 안배라도 해둔 것 처럼 차곡차곡 얹혀지는 낯익은 과정이 되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판에 박힌 경로에 따라 금년에도 결국 최종 수매가격은 10% 안팎에서 타결될 공산이 크다.
농정의 합리화나 수매가의 경제적 영향,그리고 농촌경제발전의 근본대책을 도외시한 채 인상률의 숫자놀음에 치중하는 정치성 통과절차를 이제는 청산할 때가 됐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재정에 엄청난 압박을 주면서도 농민의 생활개선에는 일과성의 효과밖에 거두지 못하는 현행의 수매제도를 수십년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은 농정개혁의 의지와 노력이 부실했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작년 가을 쌀수매를 둘러싸고 새로운 제도도입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한고비가 넘어가자 다시 이 문제는 방치되고 말았고 금년에도 역시 올 가을만 적당히 넘기고 보자는 식의 무사안일이 재연되고 있다.
수없이 되풀이 돼온 농촌사회와 농업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지적은 말할 것도 없고 쌀까지를 포함한 농산물전반의 시장개방 압력에 대응하기가 무척 어려워진 국제통상질서의 변화를 감안할때 적어도 금년만은 농림수산부가 추곡수매제도의 획기적인 개선안을 수매가격 발표와 함께 내놓았어야 옳았다.
지금부터라도 농정 당국은 해마다 미뤄온 수매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작업계획을 국민앞에 밝히고 실천에 나섬으로써 비경제적인 수확기의 연례행사를 청산할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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