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2세」 소,성인화 바람(지구촌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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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볼셰비키에 희생된 제정러시아 마지막 “차르”/공산당 몰락후 민족주의 고조… 처형장 성역화
청나라의 마지막황제 푸의와 함께 20세기 들어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은 제왕으로 꼽히는 제정러시아의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2세가 소 공산당이 몰락하면서 다시 각광을 받고있다.
니콜라이 2세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글라스노스트(정보공개)정책에 힘입어 그의 죽음을 둘러싼 베일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이미 시도돼 왔었다. 그러나 지난 8월 보수 강경파에 의한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데 이어 소 연방해체 움직임에 따른 러시아민족주의 무드가 고조되면서 이 작업은 단순한 재평가 차원을 넘어 성대화추세마저 보이고 있다.
1894년 26세의 나이로 로마노프왕조 제18대 차르가 된 니콜라이2세는 1917년 3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사학자 랴자노프스키의 지적대로 「흐느낄 겨를도 없이」 왕관을 빼앗겼다.
니콜라이2세는 그후 우랄산맥 중턱에 있는 예카테린부르크(구스베르들로프스크)의 한 외딴집에서 유폐생활을 하던중 이듬해 7월 내전이 발발하자 알렉산드라왕비·알렉세이왕자·올가공주 등 일가족 및 시종 10명과 함께 볼셰비키의 총탄세례를 받고 처형됐다. 그의 유골은 89년 4월 한 희곡작가에 의해 발견되기까지 70여년동안 인근 개천가진탕속에 그대로 내버려져왔다.
모스크바거리 화가들은 요즘 니콜라이2세의 초상화를 인기상품으로 그려 팔고있다.
지난 8월 쿠데타때는 반쿠데타시민 수십만명이 재정러시아의 3색깃발을 흔들며 『니콜라이2세』를 연호했다.
최근 결성된 러시아 민족당은 니콜라이2세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있다. 이보다 앞서 공산치하에서 단절된 러시아적 전통계승을 주창하며 창립된 「파먀트(기억)」라는 단체로 그의 복권을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해 5월에는 입헌군주제와 러시아 정교의 국교부활을 표방하는 입헌군주당까지 결성됐다.
그러나 니콜라이 2세의 성인화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그룹은 러시아정교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그의 처형장소를 기념공원으로 지정,성역화 하도록 당국에 요구하는 한편 연일 추모예배와 집회를 주도하면서 이곳에 예배당과 유물전시관을 짓기로 했다.
이미 이곳은 국내외의 관광객과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일종의 박물관 구실을 톡톡히 하고있다.
또 예카테린 부르크지역 각급 학교에서도 혁명이래 처음으로 니콜라이2세를 비롯한 옛 차르들에 대해 「깊이있게」가르치기 시작했다.
또 마지막 차르의 처형장소와 무덤을 발견한 사람중 하나인 지질학자 아브도닌은 그에 관련된 일련의 작업이 『단순한 사실의 재발견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적 정의,새로운 러시아문화,나아가 새로운 도덕의 발굴』이라고 단정하면서 유엔이 니콜라이2세 탄생 1백25주년이 되는 93년을 『니콜라이 2세의 해』로 정하도록 하자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고있다.
이렇듯 구악의 상징이자 인민의 적으로 매도돼 혁명분자들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혔던 니콜라이2세는 사후 70여년만에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공산체제의 부조리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막연히 먼 과거를 동경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으며 자칫 공산체제보다 훨씬 혹독한 차르체제의 망령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소리도 만만찮아 그 귀추가 주목된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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