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비열한 성자들/김동수(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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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짜증스러운 무더위속,이곳 저곳에서 향기롭지 못한 냄새들이 천지를 진동한다. 피서지에 나가보면 행락인파가 아무렇게나 버린 쓰레기 썩는 냄새로 코를 틀어쥐어야 하고 집구석에 앉아서는 신문과 방송이 전해주는 기막힌 냄새에 또 코를 틀어막지 않을 수 없다.
그럴싸한 이름을 내걸고 명망가 행세하는 위인들의 뒷구석 냄새가 왜 그렇게 피서지의 쓰레기 만큼이나 쏟아져 나오는지 숨막힐 지경이다. 올 여름뿐 아니라 올들어 내내 우리를 괴롭혀온 수서사건이다,국회의원 뇌물사건이다,지방선거공천때의 억대 뒷거래라는 등등의 악취에 시달린끝에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인지 한꺼번에 구린내나는 사건들이 몰아치고 있다.
그것도 모두가 한결같이 거룩한 사업을 한답시고 세상의 존경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어르신네들이 몰고오는 소동이다. 정치판 언저리에서 어기적거리는 몰골들,대학입학부정의 주연자들,종교를 등에 업은 자칭 사업가,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자로 잡아 가두는 사회사업가에 이르기까지 누구하나 믿을 구석이 없다.
하기야 그런 사람들과 상대하는 괴로움을 겪는 것이 꼭 우리시대만이 아니라고 자위하면 그만이다. 역사적으로 우리 조상때부터 그런 일을 겪어왔으리라는 것을 짐작케 하는 몇몇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 재상이자 문장가였던 이제현은 그의 문집인 『역옹괴설』에서 『시쳇말로 간사하게 남을 속이고 잘난체 하는 사람을 성자라고 한다(속어,이궤중목자부자,위성자)』는 말을 남기고 있다. 이 글귀에 맞추어보자면 우리는 지금 가위 성자의 홍수시대에 살고있는 셈이다.
구원을 빙자해 막대한 사채를 끌어모아 천년왕국을 꿈꾸다 사기혐의로 붙잡혀 들어간 세모의 유병언 사장,나라의 영재를 길러낸다는 허울좋은 건국의 이름밑에 수십억원의 뒷돈을 챙기며 수년동안 조직적으로 입시부정을 자행한 혐의의 유승윤 건국대학교 이사장과 총장님,나라의 위임을 받아 불우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치료하기 위해 사회사업을 한다며 멀쩡한 사람들을 가두어 국고보조금을 축내온 대전의 신생원,모두가 번듯한 명분으로 세상을 속여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뿐이라면 어느 사회든 하부구조에 있을 수 있는 현상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라를 경륜하겠다는 큰 뜻을 내세우고 있는 정치인들은 어떤가. 요즈음 김대중 신민당총재 언저리를 맴도는 국회의원 공천을 둘러싸고 땅문서까지 오고 갔다는 뒷거래 소문,거기서 빚어지고 있는 주먹다짐 등 언필칭 제1야당의 집안싸움에서 풍겨나오는 냄새도 고약하기는 마찬가지다.
냄새가 나는 것은 야당뿐이 아니다. 다음 대통령후보 선출문제를 놓고 불거져 나오는 민자당내의 박치기 역시 상서롭게 보이지 않는다. 민정계의 음침한 냄새를 풍기는 애드벌룬에 독기를 품고 달려드는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의 탁월하다는 정치적인 본능이라는 것도 깨끗한 냄새가 아니다. 이 모두가 한여름을 더욱 무덥게 하고 있다. 당당하다거나 공명정대한 기색없이 쉬쉬하며 우물대는 인상 때문이다. 쇠고랑 차고 수감되는 세모의 유사장에서부터 정치판 인사들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보도기관들의 카메라앞에서 지어내는 미소가 한결같이 어눌하고 징그럽게까지 보이는 것은 지루한 장마끝의 무더위에서 오는 짜증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에 믿을 것 없다는 자포자기류의 유행어에서부터 고등학교시절 배웠던 석덕지유,북곽선생의 이야기가 꼬리를 물기 때문이다.
요새말로 학식과 덕망을 갖추었다는 훌륭한 인물로 연암 박지원의 『호질』에 나오는 조선왕조시대판 성자의 이야기다.
『인자한 염통,의로운 쓸개,충성스러운 마음,순결한 지조에다 입으로는 백가의 말을 꿰고 뜻으로는 만물의 이치를 통하는』 모두가 의롭다고 여기고 사모하는 사람이었다.
마침 깨끗한 것만 골라 잡수는 호랑이가 이 북곽선생에게 먹을 거리로 삼겠다는 영광을 안겨주었다. 짐승계까지 인정할 정도의 인재로 알려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 학식과 덕망을 갖춘 선생님이 옆집 과부를 탐해 개구멍으로 들락거리다 똥통에 빠져 버린다. 호랑이는 이를 보고 『잡아 먹을 값어치조차 없다』고 발길을 돌렸다는 이야기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말이 있다. 요즘은 위아랫물 가릴 것 없이 평등화돼 오염돼 있다지만 그래도 상수원이 맑으면 덜 더러울 수 있다.
문제가 된 이 시대의 자칭 성자들뿐 아니라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구정물이 튀기전에 누구나 자신의 주변을 겸허하고 솔직하게 뒤돌아 보아야 할때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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